『미슐랭 가이드 한국』이 나왔다. 색맹 환자도 아닌데 '그린'과 '레드'를 구분 못해 절절맸다. 그린 가이드에 식당 별점은 없었다. 그런데 별점이란 걸 미리 한번 매겨보고 싶었다. 그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미슐랭 가이드 한국』살펴봤더니
지난 5월 프랑스에서 발간된『미슐랭 가이드 한국』에는 프랑스 취향이 강하게 묻어난다. 고급 레스토랑 리스트를 뽑아보면 답이 나온다.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스 그릴, 팔레 드 고몽, 르 생텍스, 라 시갈 몽마르트…. 이탤리언 레스토랑 '빌라 소르티노', 파크하얏트 서울의 '코너스톤', 탤런트 배용준이 대표로 있는 '고릴라 인 더 키친' 정도를 빼면 서울은 프랑스 레스토랑 천국 같다.
그러나 한국의 여행지를 다룬 책자인 만큼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역시 '한식'이다. 고급 한식집부터 시장통 밥집까지 두루 소개했다. '삼청각'이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당시 북한 대표와의 만찬 장소로 만들어진 일화를 적었고, 전형적인 한국식 숯불구이 전문점으로 '삼원가든'을 추천하기도 했다. 서울 동대문의 '진옥화 할매 원조 닭한마리'를 두고는 "한국식 그릇에 닭 한 마리가 올라오는데 단순해 보이지만 정말 맛있다. 잊지 말고 국수를 주문해 곁들여 먹으라"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 새로운 스타일의 한식당으로 서울 남산의 '품 서울'과 신사동의 '정식당'을 추천했다.
지방의 식당으로는 경주식 찰보리 비빔밥을 맛볼 수 '숙영식당', 70년에 걸쳐 4대째 이어오는 '동래할매파전', 제대로 된 민어회를 맛볼 수 있는 목포 '영란횟집'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 낙원동의 낙원떡집, 안동의 맘모스제과, 대전의 성심당, 경주의 황남빵 등을 소개한 걸 보면 디저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블루리본 서베이'의 도움을 받아『미슐랭 가이드 한국』 리스트를 검토했다. 그런 다음 대표 식당을 유형별로 묶어 알아보기 쉽게 구성했다. 블루리본은 1차로 웹사이트(www.bluer.co.kr)를 통해 일반인의 평가를 수집해서 평점을 낸다. 이 평점을 기준으로 리본 0에서 2개까지 리스트를 만들고, 블루리본 2개를 받은 곳 중에서 블루리본 평가단이 리본 3개 식당을 따로 정하고 있다.
리본 1 _시간을 내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리본 2 _주위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곳
리본 3 _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이는 곳
레스토랑 미슐랭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해 _
1_파리스 그릴(서울 용산구, 리본 3) 오픈 키친에서 준비하는 스테이크, 생선, 파스타 등을 맛볼 수 있다. 메인 요리를 시키면 샐러드를 뷔페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의 브런치 뷔페가 인기가 높다. 남산과 바깥 정원이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 1930년대 파리 스타일의 마호가니풍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_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서울 중구, 리본 3) '요리계의 피카소' '식탁 위의 시인'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명장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 화려한 플레이팅은 맛뿐 아니라 시각적인 만족을 느끼게 한다. 미슐랭이 파리에서 별 3개로 인정한 프랑스 레스토랑의 한국 분점이다.
3_테이블 34(서울 강남구, 리본 3) 자극적이고 기름진 맛을 배제한,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프랑스 요리를 내는 곳. 오랜 기간 일정 수준의 맛을 유지하고 있으며, 34층에서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다.
한식당 전통과 아방가르드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한식
1_필경재(서울 강남구, 리본 3) 세종대왕의 5남인 광평대군의 증손 이천수가 성종 때 건립해 19대째 살고 있는 전통 한옥에서 즐기는 한정식. 식사를 마치고 한국식 정원에서 즐기는 떡과 차가 인상적이다.
2_발우공양(서울 종로구, 리본 2) 조계사에서 운영하는 사찰 음식 전문점으로, 전통 사찰 음식을 현대에 맞게 되살렸다. 코스로 나오는 정갈한 요리는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3_정식당(서울 강남구, 리본 2) '뉴 코리안'이라는 콘셉트로 한식을 프랑스 시각에서 해석했다. 비주얼은 아방가르드하고 식재료와 조리법은 한식과 양식을 넘나든다. 접시에 음식을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플레이팅이 돋보인다.
서민 식당 이런 맛과 분위기는 처음이야
1_성북동 돼지갈비집(서울 성북구, 리본 0) 30년이 넘은, 성북동 일대에서 유명한 돼지갈비집.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는 향이 좋고 기름이 쏙 빠져 담백하다. 바비큐 좋아하는 외국인에게도 익숙한 맛이다.
2_뚱보할매김밥(경남 통영, 리본 0) 뱃사람들을 상대로 김밥을 팔던 어두리 할머니가 김밥에 넣은 내용물이 자주 상해 고민하다 궁리 끝에 김밥 속을 빼고, 매콤한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곁들여 내기 시작했다. 이 단순한 조합이 인기를 끌면서 충무 뚱보할매김밥이 생겨났다. 지금은 할머니의 후손들이 운영한다.
3_진옥화 할매 원조 닭한마리(서울 종로구, 미수록)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끓이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호기심이 인다. 푹 익힌 닭고기를 직접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다. 취향 따라 김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지난 5월 17일『미슐랭 가이드 한국』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지난해 4월 한국관광공사가 미슐랭 본사와 가이드북 발간을 위한 양해 각서를 체결한 후 근 1년 만이었다. 미슐랭 가이드는 '그린'과 '레드'로 나뉜다. 두 책은 표지 색깔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슐랭 가이드'는 하나부터 셋까지 식당의 별점을 매긴 레드 가이드를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책은 여행지와 관광지를 소개하는 '그린 가이드'다. 식당과 거리가 먼 관광 책자에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외식업계가 들썩거렸다. 그게 다 미슐랭에 붙은 프리미엄 때문이었다.
미셰린 타이어를 모르는 사람도 미슐랭은 알았다. 타이어 회사 미셰린(미슐랭의 영어식 발음)이 1900년에 자동차용 지도와 여행안내서 용도로 출간한 책은 이제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위를 얻었다. 지난 2003년에 프랑스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는 미슐랭의 식당 평가에서 별 하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이 '그린'이어서 다행이었다. 책에 실린 전국의 식당 리스트는 100곳이 조금 넘었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이름을 올린 건 당연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은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서울 분점쯤 되는 곳이니까. 그래도 '놀부부대찌개' 같은 프랜차이즈가 이름을 올린 건 너무했다 싶었다.
'한국편'에 실린 식당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궁금했다. 물론 별점은 나와 있지 않았다. 식당을 평가하는 어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담보된다면 리스트의 분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프랑스인의 취향과 선호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음식을 통한 문화 읽기. 다시 말해 두지만, 그린 가이드에 식당 별점은 없다.
미슐랭 별점으로는 이웃 나라 일본이 최고
영화 '트루맛쇼'를 보고 결심했다. 맛 칼럼니스트 예종석씨에게『미슐랭 가이드 한국』에 실린 식당 리스트를 보내 자문을 구하기로. 영화에 나와서 그런 바른 말을 하는 분이면 괜찮겠다 싶었다. 예종석씨는 한양대 경영대학장이자 영국 요리 월간지『레스토랑 매거진』의 '세계 50대 레스토랑' 추천위원이었다. 두산의 박용만 회장도 자주 전화를 해서 식당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리스트를 검토한 예 교수는 "별점을 매긴 것도 아니고, 관광 가이드에 곁들여 식당을 소개한 것일 뿐 큰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우래옥'이나 '하동관' 같은 오랜 전통의 식당들도 외국 음식에 박하고 인테리어나 종업원의 서비스에도 높은 배점을 하는 미슐랭의 기준으로는 별 1개 정도나 받을 것 같다. 그들이 이미 파리의 본점에 별 셋을 준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정도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별 3개짜리 식당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미슐랭이 '레드 가이드 서울' 제작에 들어가더라도 관계자들이 리스트를 정하는 데 아주 고민이 많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슐랭 평가에 있어 이웃 나라 일본은 단연 최고였다. 도쿄, 오사카, 교토 이렇게 세 도시가 검증을 마치고 해마다 별점을 갱신 중이었다. 4년 전에 첫선을 보인『2008 미슐랭 가이드 도쿄』는 27만 부나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재작년에 나온『2010 미슐랭 가이드 도쿄』의 경우 별을 받은 레스토랑만 197개로, 도쿄가 최고의 미식 도시임이 또 한 번 입증됐다. 파리의 레스토랑이 4만 개, 도쿄의 레스토랑이 16만 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별의 개수에서 도쿄가 앞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예종석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적으로는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할지 몰라도 음식 맛의 일관성과 서비스, 인테리어 등을 놓고 봤을 때 아직은 일본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맛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어떤 기준을 세워서 평가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점수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미술품 값이 비싸다고 꼭 뛰어난 작품은 아니잖아요. 평가는 엇갈릴 수 있어요. 같은 식당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별 셋을 주고 미슐랭은 별 하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음식을 평가하는 두 매체의 차별된 시각이 들어가는 것이죠. 미슐랭만 해도 프랑스 레스토랑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해서 자국의 요리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맛 평가서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미슐랭에 견줄 만한 레스토랑 평가서로 미국의 '자갓 서베이'를 꼽을 수 있다. 팀 자갓과 니나 자갓 부부는 친구들을 불러 레스토랑 평가 점수를 매기게 했고, 이렇게 만든 소책자『자갓 서베이, 뉴욕 레스토랑』이 모태가 되어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로 성장했다.『2005 미슐랭 가이드 뉴욕』이 나오면서 평가의 신뢰도를 놓고 잠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두 평가서는 성격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미슐랭이 엘리트적이고 프랑스적이라면, 자갓은 대중적이고 미국적이다.
'자갓 서베이'의 지론은 이렇다. "어쩌다 한 번 들르는 한 명의 미식가보다 자주 들르는 수천 명의 고객 의견이 더 정확하다." 그럴듯했다. '미슐랭 가이드'가 음식 평론가 같은 소수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평가하는 반면 '자갓 서베이'는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이를 통계로 점수를 낸다. 설문 참가자가 음식의 맛, 실내 분위기, 서비스 등 3가지 항목에 평점을 매기고, 음식의 적정 가격과 주관적인 평가를 덧붙이는 식이다. 올 초에 나온『자갓 서울 레스토랑』개정판의 경우 작년보다 레스토랑 수가 35개 늘어난 306곳이 소개됐다. 그러나 한 카드사와 독점 제휴를 맺고 출간된다는 점, 서울만 다룬다는 점에서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내에도 '자갓'처럼 외식을 즐기는 대중의 투표에 기초한 레스토랑 가이드북이 해마다 출간되고 있었다. 2005년에 첫선을 보인 '다이어리R'과 '블루리본 서베이'가 그 주인공.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곳을 놓고 저울질하다 블루리본으로 결정했다. 다이어리R이 서울에 있는 식당만을 평가 대상으로 삼은 데 반해, 블루리본은 지방의 식당을 평가에 포함한 점을 높이 샀다.
블루리본 김은조 편집장이 리스트를 검토한 후 평을 보내왔다. "서울에 있는 식당 리스트는 그런대로 납득이 가지만, 서울 이외의 식당은 그 지방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답변이었다. 김 편집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천한 리스트를 기초로 미슐랭에서 최종 리스트를 뽑은 느낌이 든다"며 "한국관광공사에서 후원을 한 만큼 한식당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관광지나 유적지 인근의 식당을 별점 평가 없이 고른 만큼 프랜차이즈 식당이 포함된 것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천년 고도 경주의 그 많은 식당 중 프랜차이즈 일식점 '기소야'가 이름을 올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토속 맛집을 두고 '카레하우스케이'라는 식당이 소개된 점도 의아했다. 블루리본은 서울 성북구의 한식당인 '삼청각'을 평가에서 제외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현재 위탁 운영 업체가 수시로 바뀌어 맛의 일관성을 평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신속성만큼은 자국의 서베이 업체를 따르기 힘들어 보였다.
김은조 편집장은 레드 가이드와 관련해서 예종석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한식당, 외국 식당을 통틀어 별 3개짜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레드 가이드가 나온다 해도 서울에 한정될 텐데, 별 한두 개를 받을 만한 식당은 많이 잡아도 20개 미만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그 말미에 "미슐랭에서 외부 압력 없이 원래 기준대로 평가한다는 가정하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미슐랭은 '맛의 고집'에 주목한다
"미슐랭으로부터 '스타'를 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란 말이 있다. 물론 레드 가이드 얘기다. 조사원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암행 조사를 원칙으로 하며, 보통 평가를 위해 식당 한 곳을 세 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일 한가한 시간에는 음식 맛을 집중해서 점검하고, 주말 저녁처럼 바쁜 시간대에는 서비스와 고객 만족도를 본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신원을 밝히고 셰프나 오너를 직접 인터뷰하기도 한다.
조사관들은 식재료의 질, 요리법과 맛의 완성도, 요리의 개성, 가격, 맛의 일관성 등을 꼼꼼히 평가한다. 농장에서 가져온 유기농 식재료만 쓴다고 하면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현지 농장을 찾을 정도로 검증에 세심하다. 미슐랭에서 별 3개를 받은 도쿄 긴자의 초밥집 '스키야바시 지로'는 좋은 예가 된다.
오노 지로(86) 사장은 요리 경력만 78년이다. 그는 예약 손님에게 제대로 된 초밥을 내기 위해 반드시 30분 정도 예행연습을 한다. 또 손에 상처가 나거나 굳은살이 생겨 감각이 무뎌질 것을 염려해 여름에도 외출을 할 때는 꼭 장갑을 챙긴다. 위생 관리는 더욱 철저해 보건소 직원들이 주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미슐랭의 조사관은 음식에 대한 이런 고집과 성실함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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