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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발길 닿는, 단골 가게

글쓴이: 청아  |  날짜: 2012-02-29 조회: 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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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출출한 날은 저절로 발길이 닿는다. 혼자 가도 불편하지 않다. 쌓은 인연이며 떠나보낸 말도 수두룩하다. 남다른 입 취향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바로 단골 가게 이야기다. 요즘 같은 날, 따끈한 붕어빵 한 봉지 품고 간다. 나의 단골 가게 주인과 나눠 먹으러.



오늘도 발길 닿는, 단골 가게



당인리 발전소 > 커피 발전소

헨리크 셰링의 바이올린 선율이 필터를 거쳐 잔에 담긴다. 검은 음표가 똑똑 떨어지는 아침. 그 한 잔의 음악이 달지만은 않다. 아침 햇살이 쓴 입맛을 다시며 가게 안을 깨우고, 헌책들은 재채기하듯 오래 묵은 먼지를 게워낸다. 주인의 표정을 따라가 보지만 그 무심한 얼굴은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카페 맞은편의 당인리 발전소.

 

굴뚝이 토해내는 연기는 아침일수록 더 탁해 보이지만, 카페 안에선 뭉게뭉게 라테 위의 거품을 닮았다. 다시 창밖을 본다. 하늘에 오른 연기는 구름인 척, 시침 뚝 떼고 태연하게 흘러간다. 이제야 손을 뻗어 찻잔의 손잡이를 잡는다. 순간,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라는 어느 소설 속 구절이 생각난다.

 

오전 10시의 커피 발전소, 내겐 이곳이 그렇다. 하루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불안한 여자에게 경제적 재앙과 축복 같은 감각을 함께 안겨준다. 몇 안 되는 자리에는 의자가 무성의하게 놓여 있고 누군가 들춰보다 꽂아두었을 책들도 마냥 두서없다. 무엇 때문에 나는 매일 이곳에 앉아 라테의 사라지는 거품을 지켜보는 것일까. 모든 커피를 손으로 직접 내려 만들어주는 주인의 정성? 자유롭지 못한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박한 일탈의 흔적?

 

어쩌면 커피 발전소라는 이름에 끌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면 커피가 만들어낸 전기에 감전되어, 내 생도 발전(發電)할 것 같은, 아니 발전(發展)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_최선혜(편집자)

- 커피 발전소 곳곳에 묻은 손때와 정성의 흔적. 또 그윽히 부푼 라테 한 잔.


 


오늘도 발길 닿는, 단골 가게



안국역 > 산체스 막걸리

붉은 글씨로 정갈하게 쓴 '산체스 막걸리'. 얼마 전 안국역 주변에 오픈한 막걸릿집 이야기를 하자면 주인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조금 치켜세워주자면 자메이카의 밥 말리 같은 안면 굴곡과 눈빛을 지닌 또 조금 놀리자면 베트남 어느 마을에서 흔히 불릴 듯한 '창따이!'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산체스 박', '창따이'로 불린다.

 

어쨌든 그는 가게를 열기 전까진 영화 <스캔들>, <황진이>, <우.생.순>, <내 깡패 같은 애인> 등에서 미술을 담당하던 영화인이었고, 나 역시 그를 오래전 영화 현장에서 만났으며, 한동안 동가식서가숙하던 사이기도 하다. 수많은 영화의 세트를 짓고 허문 그답게 산체스의 인테리어에는 곳곳에 그의 재능이 녹아들었다. 전위적인 그림도 걸려 있고, 사막의 흙바람 좀 쐬어봤을 것 같은 양탄자도 걸려 있다.

 

얼마 전엔 늦은 시간 춤출 사람들 몸도 흔들라고 사이키 조명도 사들였다. 하지만 허름한 막걸릿집의 정서는 결코 버리지 않았다. 더구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마막걸리와 주인장이 수줍게 내놓은 카르보나라 떡볶이, 여자친구에게 권할 만한 향긋한 유자막걸리, 무엇보다 충청도의 어느 산속 도사 같은 박 노인에게 전수받아 그 맛을 계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산체스 보쌈' 등의 메뉴도 정갈하고 정겹다.

 

이제 나는 안국역을 빠져나와 인사동으로도 삼청동으로도 북촌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스타벅스 쪽 골목으로 발길 돌려 산체스의 낭만으로 향하는 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_김태환(포토그래퍼)


- 대낮부터 취하게 만드는 산체스 주인장과 그 이름도 정겨운 대마막걸리.


오늘도 발길 닿는, 단골 가게



홍대 놀이터 > 카페 벨로주

우리는 모두 일종의 공간 유목민이다. 공간과 공간을 옮겨가며 일생을 보낸다. 나 또한 유목민 신분으로 홍대 앞에서 4년째 거주 중이며, 나름의 편식을 통해 공간 이동을 하며 살고 있다. 나의 편식은 나름 까다로운 편이지 싶다. 공간의 정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며, 그 공간의 살림살이가 주인과 서로 닮아 있어야 한다.

 

오래 기억되는 곳. 주제가 선명한 곳이 좋다. '벨로주(veloso)'가 바로 그런 곳이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음악의 구멍이 존재한다. 항아리의 구멍처럼 그 안으로 끊임없이 음악이 들어가 채워지기도 하고, 새어나오기도 한다. 이곳은 '벨로주'라는 제2의 이름을 지닌 주인의 남다른 음악 선곡들로 운영되는데. '벨로주 season 1'은 장소가 지닌 특성상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홍대와 어울려 지내지 않는 사람들과 음악깨나 즐겨 듣는다는 이들을 끌어 모았고, 그곳에서 보여주는 음악은 생소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나 또한 음악의 이방인으로서 배회하던 시절 벨로주에서 몇 차례 공연하며 음악적인 자신감을 갖곤 했다. 지난 12월, 벨로주는 놀이터 근처의 더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벨로주 season 2'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카페가 아닌 공연을 즐기러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다 풍부한 음악적 색깔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평일에는 카페 공간으로 활용되고 주말에는 200명이 신나게 서거나 앉아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 클래식, 재즈, 포크, 탱고, 록, 사이키델릭 등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형 카페라는 이곳만의 정체성은 여전하다. 부디 인생도 이곳 벨로주처럼 오래오래 음악이길. _최고은(뮤지션)

- 벨로주식 음악 여행은 맥주 한 잔과 가벼운 치킨 샐러드면 족하다.


오늘도 발길 닿는, 단골 가게



낙성대역 > 커피 커넥션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 있다. 벌써 몇 년째 생일이면 떡알갱이 들어간 미역국도 끓여주고 명절이면 과일이라도 사가라며 슬쩍 봉투도 찔러주는 맘씨 따뜻한 이모네가 있는 곳이다. 어느새 맘속 든든한 이웃이 된 이모와 삼촌네 가게. 그 가게 바로 맞은편에 카페가 하나 생겼다. 기하학적으로 맞닿은 유리 외관이 한눈에도 모던한 멋을 풍긴다.

 

커피 커넥션이라는 작은 간판엔 커피로 이어지고 소통하는 관계라는 의미도 담았다. 푸른 진셔츠를 입고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내리고 케이크를 굽느라 분주한 이들은 귀엽고 산뜻한 20대 청년 둘이다. 가만 보니 그중 한 명이 누군가를 꼭 빼닮았다. 수줍고도 선한 미소가 나의 단골 가게 안주인인 이모의 그것이다. 커피 커넥션은 다름 아닌 디자인을 전공한 이모의 아들과 바리스타인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다.

 

당연히 나는 아들이 카페를 차린다는 뉴스부터 시작해서, 오늘은 찻잔을 고른다, 조명을 고른다는 자잘한 이야기까지 챙겨 들었다. 첫 오픈 날엔 떡도 얻어먹고 또 자연스레 동네에서 커피를 먹고 약속을 잡은 날엔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가끔 작업거리를 들고 원고를 쓰느라 몰두하기도 했으며 지루해지면 물끄러미 한쪽 벽면에 흐르는 광고 동영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곳의 매력은 커피 맛도 맛이지만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나만의 시간이 흐르는 완벽한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동네 한구석에서 여행자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니! 어느덧 체인 커피점의 그저 그런 인테리어와 분위기에 익숙한 아니 질려버린 나 같은 치들에게 커피 커넥션은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다. _기낙경(<나일론>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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