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하나는 끝내주는데, 무뚝뚝한 서비스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거나, 말도 안되는 대접으로 상처를 받는 맛집이 있다. 이런 집을 찾아가는 사람은 사실 식탐가 또는 미식가인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이런 정도의 대우는 아랑곳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한 기억이 있지만 자꾸 가게 되는 맛집, 점점 발전하는 서비스에 더욱 애정이 가는 그런 맛집 몇 곳을 소개한다. 박승용 씨는 증권회사에 다니는 30대 초반의 총각이다. 그는 단 한 번도 특정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려 본 적이 없다. 한번은 ‘맛집 많이 아는 게 경쟁력’이라며 밤마다 블로그를 뒤지는 동료를 따라 정동의 한 추어탕집에 갔었다. 그런데 골목 안에서 시작된 줄이 큰길까지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는,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냥 돌아와 버렸다. 추어탕이 다 똑같은 추어탕이지, 뭐 줄까지 서서 난리람…! 그러던 그에게 얼마 전 너무 예쁜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그녀는 맛집 무한 관심자였고 블로그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녀는 밥 먹는 모습도 정말 환장하게 예뻤다. 그녀가 식당에 가서 먼저 하는 일은 디카 챙기기. 반찬이 나오면 촬영을 시작해서, 테이블 세팅이 끝나면 벌떡 일어나 풀 샷을 촬영했다. 박승용 씨는 그녀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촬영 모습을 감상(?)하면서 침을 삼켜야만 했다. 맛집 탐험가 여친을 둔 박 씨는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어여쁜 그녀가 가자는 맛집을 꼭 가게 되었는데, 어떤 때는 2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 먹기도 했다. 하지만 박승용 씨는 예전같이 인상이 구겨지거나,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여친에 이끌려 맛집을 돌아다녀 보니, 사람들이 왜 줄을 서서, 틱틱 거리는 서비스, 심지어 선불, 아니꼬우면 나가라는 위협, 할머니의 욕지거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조금은 마조히스트처럼 보이기도 하는(여친에게는 마조히스트 대신 미식가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들의 맛집이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소개되는 ‘아니꼽지만 맛있는 집들’에 대한 감정은 맛 집 주인과는 관계없는, 단골들의 사심없는 생각임) 약수동 순대국집 불친절하다기 보다는 사장이 너무 무뚝해서 어색해지는 집이다. 자리 없어요? 하고 손님이 물으면, ‘아 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든지, 미안한 표정을 지어주면 좋으련만, ‘기다리세요’ 단 한마디, 그것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살가운 맛이라고는 국물만큼도 없는 주인 아주머니지만 그래도 이 집을 계속 찾아가게 되는 것은 그 퉁명스러운 아주머니의 천재적 기억력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순대국은 끓는 육수에 고기를 넣어주는 것인데, 이 집 주인은 손님 개개인의 취향을 기억해주는 놀라운 서비스의 주인공이다. A손님은 머릿고기를 좋아하지, 머릿고기를 더 넣어준다. B손님은 간을 좋아하니 몇 점 더 썰어 따로 한 접시 챙겨준다. C손님은 고기 다 빼고 순대만 넣어주면 좋아한다. D손님은 매운맛을 좋아하니 고추장 양념을 한 주걱 풀어주면 입이 찢어진다. 물론 두 번 이상 간 손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지만, 대체 어느 식당에서 개인 입맛을 기억해 줄까. 그런데, 그렇게 갸륵한 마음을 쓰시는 김에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라도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날까? 그 양반은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손님 쪽에서 한 마디 대화를 시도하면 그냥 피식 웃거나 민망 200%의 단답으로 끝내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대놓고 인상을 구기거나 경우없는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니, 그저 내 입맛 기억해준다는 것과 맛있는 순대국을 변함없이 만들어준다는 것에 손님 역시 시침 뚝 떼고 들어가 묵묵히 식사하고 말없이 사라지면 될 일이다. 위치 : 지하철 6호선 약수역 7번출구, 소방서 골목 들어가서 왼쪽 명동 따로집 소고기국밥 오전 11시.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이 남았는데, 이 집 앞에 멀쩡한 외모의 직장인들이 줄을 서 있다. 모두들 완벽한 정장에 빈틈없는 넥타이 차림이다. 그러나 눈동자를 자세히 보면 거의 사망 직후의 동태 눈알이다. 어제 밤새도록 달리고 아침에 사우나 잠깐 한 뒤에 출근, 오전 내내 혼미하게 보낸 뒤 달려온 명동의 직장인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따로집(예전에는 ‘이집에서 17년’)의 따로국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제 돈 내고 먹는 일이지만 ‘얻어먹는’다는 표현이 옳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두뇌 속에는 오로지 ‘빈자리’에 대한 희망뿐이다. 이 집의 테이블을 꽉 차 있다가 거의 한꺼번에 비워지는 특징이 있다. 자리가 그렇게 나오면 나온 사람 수 만큼 입장이 시작된다. 그런데 좌석은 사장이 지정하는 곳에 앉아야 한다. 사장이 맨 안쪽에 있는 의자를 손짓했는데 손님이 제 마음대로 다른 테이블에 앉을 경우 ‘퇴장 당하기’도 했다. 주인이 ‘강퇴’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한 사람 속이라도 더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차곡차곡 더 많은 사람들을 앉히겠다는 깊은 뜻인 것이다. 주인은, ‘결코 국밥 한 그릇 더 팔아먹겠다는 속셈이 아닌, 한 사람 더 먹이겠다는 선의’라고 했다. 그 선의가 아니라면 감히 손님에게 ‘그러시려면 나가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서슬 퍼런 주인의 눈빛에도 술 덜 깬 증권맨, 직장인들이 희희덕거리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이 집 국밥 한 그릇 먹어야 비로소 정신이 완전히 깨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요새는 사람을 내보내는 일은 없어졌고, 일본 관광객이 많이 몰리면서 예전의 히트 메뉴 ‘지짐’의 매출도 오르고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집에서 17년 시절’, ‘거기에 못 앉겠다고요? 그럼 나가시죠!’ 소리를 들어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어쩐지 주눅 든 얼굴로 들어가게 되는 집이다. 따로국밥 외에도 전, 낚지볶음 등도 맛있기로 유명하다. 위치 : 명동 후아유, ABC마트 사거리에서 후아유 골목으로 들어 10m 왼쪽 문의 : 776-2455 신길동 원조홍어전문 신길동에 가면 홍어골목이 있다. 그런데 이곳이 원래는 홍어 골목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 한 집만 이 골목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 집에 손님이 워낙 많이 몰리고, 이 집 홍어를 먹으러 왔다가, 먹고 가는 사람 보다 못 먹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자 급기야 골목 전체가 홍어 바다가 된 것이다. 그런데 원조홍어집의, 몰려드는 고객에 대한 대책없는 세월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테이블이 모자라면 막걸리 통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 먹어야 했다. 그러다 막걸리를 푸거나 새로 부어야 할 때면, 쟁반을 들고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그 자리에 놓고 먹는 일도 허다했다. 그나마 실내에 자리를 잡으면 다행이었다. 자리가 없으면 조그만 쟁반에 세팅된 홍어와 막걸리를 들고 인도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풍경을 볼라치면, 딱 초상난 부자집에 밥 얻어먹으러 온 거렁뱅이 꼴이었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손님들이었다. 인도에 비비적거릴 자리라도 있으면 거기에 앉아서는 ‘오늘도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표정으로 캬캬캬 환호하는 모습이라니! 그 먼지 날리는 길바닥에서 머슴 취급 받으며, 그저 주기만 하면 감사하다는 비루한 표정으로 굽신거리던 단골들 덕분에, 이 집은 길거리 하나를 돈 잘 버는 전문식당 골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맛있는 홍어를 만들어 준 주인장도 대단하지만, 비바람 흙먼지를 불사하고라도 ‘기필코 찾아가고 마는 단골’들 또한 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 이 집은 옆 가게를 인수, 실질적인 확장 작업을 완료했다. 따라서 이제 길바닥에서 홍어를 먹는 사람은 없으며, 한때 비위생적으로 보였던 주방도 말끔해졌다. 이런 변화된 모습을 오히려 서운해 하는 20년 단골들도 있지만, 일반 손님 입장에서야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메뉴 모두가 인기 최고인데, 파닥파닥 살아있는 느낌의 홍어무침, 콜라겐 덩어리라 할 수 있는 홍어찜, 포기 무근지가 나오는 삼합, 홍어사시미, 홍어탕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차가운 영동막걸리 맛도 그만이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포장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다. 위치 : 신길동 우신초등학교앞 사거리 하나은행 뒤 ‘옛길’ 문의 : 841-2445 안국동 먹쉬돈나 당신은 ‘먹쉬돈나’가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나? 그것은 ‘먹고 쉬지 말고 돈 내고 나가’라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먹쉬돈나의 세계적인 메뉴는 떡볶이. 해물떡볶이, 치즈떡볶이, 불고기떡볶이, 부대떡볶이, 야채떡볶이 등이 압권 빅 파이브 메뉴다. 조금 과장하면 일년내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이다. 덕성여고 앞에서 삼청동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간판이 보이는데, 골목 안쪽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열 명 정도가 줄을 서거나 주인이 준비해준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하고, 가게의 철학이 ‘먹쉬돈나’이니 살가운 대접은 바라지 않는 게 좋다. 주문하는 순간 ‘역시 소문대로군… 친절과는 거리가 멀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고 떡볶이 국물이 자작자작 끓으면서 알싸한 냄새가 올라오고, 사리가 적당히 익었을 때 한 젓갈 떠서 국물에 휘휘 저어 한 입 먹을 즈음이면, 조금 전의 어색한 불편함은 어느새 사라지곤 한다. 기다리는 시간 짧고, 일인 당 3500원에 맛있는 떡볶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그 알싸한 분위기일지언정 감사히 생각해야 할 판이다. 이 집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었으면 유학 떠나기 며칠 전 삼청동 일대를 산책하고 먹쉬돈나 떡볶이를 먹은 유학생이 5년 뒤 귀국해서 제일 먼저 간 집이 먹쉬돈나였을까! 위치 : 안국동 정독도서관 근처 문의 : 723-8089 시청앞 진주식당 ‘콩국수’ 가을겨울에는 김치볶음밥, 봄여름에는 콩국수로 줄 서는 집이다. 사실 딱히 띠겁다고 말하기엔 조금의 무리가 있는 집이다. 하지만 볕 짱짱한 무더위에 줄 서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오랜 기다림 끝에 좌석에 앉으면 무표정의 아주머니가 주문과 동시에 선불을 달라는 방식에 살짝 빈정 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여름 이 집에서 같은 시간에 콩국수를 먹는 손님의 숫자가 200여명에 이른다는 점과 출입구가 세 개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선불 제도가 ‘쌍팔년대 시절’ ‘먹튀’(먹고 튀는 녀석들)가 횡행하던 때 흔했던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그다지 개운한 일만도 아니다. 또한, 간혹 벌어지는 일이지만 서빙 아주머니들의 대장 쯤 되는 사람이 아주머니들을 향해 무언가 짜증스러운 신호를 보내는 목소리가 들릴 때는, ‘돈 내고 사먹는 고객이 소외되고 있다는 난감’이 입맛을 흐트러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마음도 콩국수 한 그릇이 턱 허니 테이블에 올라오는 순간 대부분 사그러든다. 보기만 해도 너른 콩밭의 냄새가 올라오는 걸쭉한 국물과, 소금 한 술 넣지 않아도 강원도 토종 황태 대두 고유의 향기가 입맛을 맞춰주는 자연의 맛, 그리고 쫀득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굵직한 면발 등은 들어올 때의 다소 심란했던 마음까지 개운하게 넘기고도 남음이 있다. 40년 무뚝뚝함을 습관처럼 받아들일만한 것 역시 깊은 맛 덕분이다. 위치 : 지하철 시청역 9번 출구 우회전 언덕 위 문의 : 753-5388 기네스북에 오른 서비스 세계 최악의 중국집 왕케이 Wong KEI 런던의 피커딜리광장 뒤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집인데,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집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손님이 현관으로 들어가면 일단 서서 종업원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손님이 저벅저벅 알아서 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이곳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몰상식으로 통한다. 아무튼,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몇 명이 왔는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줘야한다. 그러면 종업원이 지정해주는 좌석에 가서 앉아야 한다. 다른 자리는 없냐고 물으면 바로 짜증난 목소리로 ‘앉으라는 데 앉으라’는 대답을 한다. 관광지 수준의 식당이다 보니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한데, 미안하단 말은커녕,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합석을 시키는 건 기본이다. 거의 던지다시피 한 메뉴판은 잽싸게 읽어야 한다. 3분이면 주문표를 들고 돌아와 단호하고도 빈틈없는 주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기, 완탕 스푸에, 계란볶음밥, 그리고 탕수육과 오리덮밥 주세요. 주문표 작성이 끝난 종업원이 돌아갈 때 그를 다시 부르는 누를 범해선 안된다. 이를테면, 아니 아니, 완탕 스푸 말고요, 찐 만두로… 그러면 신경질을 바짝 부리며 되돌아 와 투덜거리며 주문표를 고치는데, 완전 주눅이 들어 기분 나빠할 틈도 없어지는 게 이 집이다. 맛도 없다. 그것은 원래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중국음식의 세계화, 런던화, 관광지화 등에는 전혀 관심없다는 말이다. 천년 전 광동성 맛 그대로, 오백년 전 사천성 재료 그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완탕 스푸는 역겨워 못먹고, 계란볶음밥은 콧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정도라 먹을 수 없고, 탕수육은 최악의 신맛이라 침만 질질 흘리다 포크를 던져버려야 할 지경이고, 오리덮밥은 세계 최강의 누린내가 무언지 평생 각인시켜주고도 남을 맛이다. 그러니 중국인 말고 누구 입에 달라붙을 수 있을까? 이런 복합적 불친절에 대해 강력 액션으로 항의했던 한 런던의 마초가 소림쿵푸의 발차기에 무참히 밟힌 뒤로는 그런 저항조차 어려워졌다는 게 런던 시민들의 하소연이다. 하기사, 지금 런던의 왕케이를 찾아가는 사람 치고 이 집의 극단적 불친절을 ‘마케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불상사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막상 경험해 본 사람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막장 서비스’로 오히려 서운해하기도 한다. 세계 최강의 불친절을 맛보겠다며 서슬 퍼런 눈빛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이야말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마조히스트들이 아닐까? 왕케이 WONG KEI 41~43 Wardour Street, London W1 020-7437-3071 / 020-7437-8408 영등포시장 ‘여로집’ 본관 오징어 볶음이 정말 더럽게 매운 집이다. 그것도 뭉근한 매운맛이면 누구나 먹을 만하겠으나, 이 집의 오징어볶음은 칼칼한 매운맛이다. 뭉근한 매운맛이, 밥 다 먹고 계산하는데 눈물이 찍 나오는 상황이라면, 칼칼한 매운맛은 오징어볶음 한 젓가락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격분 또는 흥분의 비명이 나오는 맛이다. 그래서 매운맛 시합이 취미인 귀여운 중년들이 몰려오기도 하고, 짝사랑하던 여자의 결혼식장에 다녀온 좌절남이나,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절망에 빠진 ‘용식 엄마’가 남몰래 눈물 흘리고 싶을 때 찾아가는 집이다. 그런데 이 집에 아니꼬운 게 많은 손님들도 많았었다. 그들은 대부분 이 집의 오랜 단골들이기도 한데, 대략 두 가지가 아니꼬웠다고 한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비좁은 좌석에, 기다리는 손님들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을뿐더러, 그렇게 불평을 해도, 한번 다녀오려면 마음 굳게 먹어야 하는 (화장실을 가려면 창문을 넘어야 가능했던 예전 이야기) 화장실 등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하나 불만스러운 일은 오직 현금 결제만 반겼다는 점이다. 다른 결제 수단이 전혀 막힌 상황은 아니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종업원이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카드 결제도 전혀 문제없지만 … 여로집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 2층이 정상적인 2층이 아닌, 1층을 나눠놓은 공간이라 2층은 높이가 1m 남짓? 그래서 거의 폴더가 되어 낑낑거리며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뻑하면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리는 일이 자주 있었고 그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손님이 너무 많다 보니 2층 손님이 추가 주문을 하려면 악을 써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2층 손님은 안쪽의 1층과 통해있는 창문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그 창문으로 콩나물 등 반찬을 받다 떨어트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여로집은 특히 여자 단골들이 들끓는 집이다. 그러나 오징어볶음 맛 하나는 끝내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칼칼한 오징어볶음의 양이 푸짐하고, 듬뿍 담겨 나오는 콩나물이 매우 마음이 들며, 그야말로 콩나물 팍팍 무쳐 먹는 그 매운 맛 하나는 국내 최고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먹다가 눈물이 너무 난다싶으면 계란말이나 찜을 추가로 먹거나 동치미 더 달라 해서 쭉 마시면 입가심이 된다. 게다가 값도 싸서 요즘같이 먹먹한 세상에 친구 둘이 매운 세상 얘기하며 소주 몇 병 마셔도 3만원이면 ‘떡을 친다’고 해도 된다. 참고로 여로집에서의 여로는 1972년에 방송되었던 국민드라마 ‘여로’에서 가져온 것이다. 위치 : 영등포시장 옛날 연흥극장 뒷골목 문의 : 2678-8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