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어쩌다 회사에서 갑(甲)이 을(乙)과, 혹은 을이 갑과 술을 한잔 할 때 먹어볼까, 친숙하게 술 안주로 접하는 생선은 아니다. 물론 요즘은 1인분에 1만원이니 1만 5천원이니 하면서 가격파괴 간판이 길거리 참치 집에도 걸리고 있지만 그런 곳은 왠지 맛에 의심이 간다. 하여 제대로 된 참치 집이라고 한다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세련된 종업원등의 서비스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만만치 않은 가격과 함께.
참치 요리를 앞에 두고 펼쳐지는 가게 안 풍경도 약간은 비릿하다. 손님들은 테이블에 앉아 한껏 격조 있는 비즈니스 대화를 나누며 요리사가 감칠 맛 나게 내오는 부위별 참치를 살금살금 먹어준다. 이들은 그저 뱃살 정도가 맛있다는 걸 알뿐, 이 생선이 무슨 생선인지, 이 부위가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등은 제대로 모르고 '주는' 대로 '먹'는다.
술이 적당히 오른 손님들은 주방장에게 좋은 서비스를 부탁하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챙겨주고 주방장은 이에 화답하느라 금가루 뿌린 청주에 참치의 눈을 넣어서 손님에게 따라 올린다. 그런 거 보면 대개의 참치 집에서 손님들은 참치를 즐기기보다 서비스와 분위기에 빠지는 듯도 하다.
연남동에 있는 참치집 '진어'는 가게 분위기에 있어 고급과는 한 발짝 물러서있다. 복잡한 골목 한쪽에 위치해있는데다가 실내 역시 작은 두개의 방에 네댓 개의 홀 테이블, 그리고 주방과 이어진 작은 바가 고작이다. 종업원들이 많으냐 하면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전부이고 주방겸 카운터는 이집 사장님의 역할이다. 그나마 이 집이 뭔가 한 방귀 뀌는 곳이라는 짐작은 가게 입구와 홀 한쪽에 있는 국회의원 이계진씨가 주인공인, 모 잡지 기사를 스크랩한 액자를 통해서이다.
본 기자가 참치와 연애를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음식에 대한 기호도 나이에 따라 변해가는 것인지 술안주는 늘 육류로 일관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회를 좋아하게 되었고 작년부터는 참치와 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육 고기에 익숙해졌던 입맛이 회를 만나게 되면서 화색이 돌았으나 약간 아쉬웠던 것은 회가 가지고 있는 다소간의 심심함과 허전함이었다. 그러나 참치는 특유의 알차고 굵직한 씹힘으로 이를 충분히 극복해주고 있었다.
이후 비교적 맛있다는 참치 집을 찾아 강남, 북을 오가고 일산등 신도시를 헤매고 다니기를 여러일, 어쩌다가 흘러 찾게 된 곳이 바로 '진어'다. 그리고 이 집은 여태까지 먹어본 참치집 중 주저함 없이 말 할 수 있는, 최고의 참치집이다.
참치집 '진어'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전문가의 힘'이다.
참치와 더불어 30여년을 살아온 김철송(55세) 사장은 자타 공인 참치박사다. 스물네살 때 들어간 첫 직장이 당시 국내 최대의 원양어업 회사였고 직접 원양선에 2년 동안 탑승해 어업 현장을 체험하기도 했다. 15년 동안 근무하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3년 동안 참치 통조림 만드는 회사를 다녔고 이후 외국계 참치 회사 지점장을 거친 후 참치 유통업을 하다가 2001년 진어를 오픈했다.
참치로 잔뼈가 굵은 분이시니 참치에 대한 애정이며 참치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무릇 기하일까. 자신의 인생과 같은 생선을 손님들이 제대로 알고 드시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그래서 가게가 한가로우면 사장은 손님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손님이 드시고 있는 참치를 교육(?)해 주신다.
이승만이 참치를 먹어보고 이것이 진짜 생선이라고 했다 하여 참 진, 생선 어, 진어로 불리다가 우리말로 옮기면서 참치가 되었다는 참치의 어원부터 시작해서 다랑어는 다랭이로 불려야 한다는 표준어 교정까지, 좋은 참치와 나쁜 참치의 구별법이나 참다랭이, 황다랭이, 눈다랭이, 황새치, 청새치 등의 맛의 차이까지 손님의 분위기를 봐가며 막힘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신다. 때때로 요즘 많은 주방장들이 참다랭이가 아닌 황새치나 청새치를 혼마구로라고 손님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기까지 하신다.
참치 박사라는 김사장의 타이틀은 단순히 경험에 의한 연륜으로만 완성된 것은 아닌 듯하다. 주방 한 쪽에 꽂혀있는 참치 관련 국내외 서적에는 그의 손때가 잔뜩 묻어있고 2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면서 사모아, 타히티에서 있었던 일들을 원고지 200장에 자필로 적어 놓기도 하였으니 공부하는 참치박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차피 생선은 머리로 먹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먹는 것이라면 과연 이 집의 참치 맛은 어떨까?
참치 맛은 참치 맛이다. 진어라고 해서 참치 맛이 갑자기 고래 고기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그 맛에 찬사를 보내거나 제대로 된 참치를 먹고 간다고 흡족해 하는 이유는 이 집의 참치는 진짜 참치이기 때문이다.
고급 생선, 참치는 보통 아가미 밑으로 15센티씩 잘라내 등급을 나누게 되는데 부위에 따라 공급 가격에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김 사장의 경우 육안으로도 등급을 금방 구분할 수 있으니 유통 과정에서 업자에게 속을 이유도 없고 유통의 흐름을 꿰뚫고 있으니 좋은 참치를 다른 집보다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웬만한 참치 집에서 특이라고 붙여 7-8만원에 판매하는 메뉴를 진어에서는 5만 원 정도에 먹을 수 있다. 특 요리에는 눈다랭이 등살, 황새치 뱃살, 참다랭이 머릿살, 참다랭이 붉은살, 참다랭이 특급부위(뱃살, 1급, 3급, 4급)등이 골고루 나온다. 고급 부위는 28,000원에 즐길 수 있다.
이 집에서는 흔히 스끼다시라고 불리는 곁반찬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참치를 먹으러 왔으면 참치만 즐기라는 사장의 고집이다.
진어에서 먹는 참치는 농염하다. 성숙한 여인에게 느낄 수 있는 원숙한 체취와 아주 잠깐 정신이 아련해지는 바다 내음이 진어의 참치에 제대로 묻어있다.
정통으로 참치를 알고 있는 주인과 그 맛을 즐길 줄 아는 손님들이 일궈내는 진어의 분위기는, 맛집이 가지고 있어야 할 단순함의 미학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보너스!!
참치 박사 김철송 사장이 전하는 참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
첫째, 참치를 김에 싸먹지 마라. 참기름에도 찍어먹지 마라. 김이나 참기름은 과거 일본으로부터 질 낮은 참치가 들어올 때 그 냄새를 없애려고 동원된 도구들이다. 25만 원짜리 특급 참치 부위를 값싼 중국김이나 참기름에 찍어먹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둘째, 참치는 오직 간장과 고추냉이로 즐겨라. 일반적으로 고추냉이를 간장에 풀어서 찍어먹는데 참치에 고추냉이를 살짝 묻히고 생선 부위를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셋째, 참치와 함께 먹는 술은 곡주가 가장 좋다. 와인이나 위스키등 향이 강한 음식은 좋지 않다. 고급 청주이면 무난하다
넷째, 한꺼번에 접시에 담겨서 참치가 나갈 경우 요리는 밖에서 부터 안쪽 순서로 드시라. 보통 가장 맛있는 부위가 중앙에 놓이는데 그걸 먼저 먹게 되면 나머지 참치가 맛없게 느껴진다.
다섯째, 미리 예약을 하고 예약 시간에 늦지 말라. 가게에서는 손님 예약 시간 30분 전에 미리 해동을 해 놓는데 너무 오래 해동을 해 놓으면 맛이 떨어진다. |
영업시간: 낮 11시- 밤 11시
메뉴: 참치회-(진) 보통 부위 17,000원/ (어) 고급 부위 30,000원/특 특부위 4만원. 스페셜(특부위.머릿살) 6만원/ 가족 특선회(모듬 한접시) 6만원/ 기타 대구탕, 냄비 매운탕, 회덥밥등
찾아가는 방법: 홍대입구역에서 청기와 주유소를 끼고 들어가 경성고등학교 입구에서 우회전해 경성고등학교 건너편 골목으로 150미터 가면 나온다.
약도
주차: 별도의 주차장이 없다.
전화번호:02-332-7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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