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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도 대체가 되나요 |
글쓴이: 검은건담 | 날짜: 2009-06-24 |
조회: 2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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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소리, 원한 소리 일단 이 칼럼을 시작하기 전 경건한 마음을 갖기 위해 애피타이저로 갈빗살을 3인분 먹어 치웠다. 걸신들린 듯 먹고 배를 두드리니 다음 날 가야 할 ‘뉴스타트’ 레스토랑이 그렇게 야만적이란 곳이란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언제 고기를 먹었느냐는 심정이 되었다. 촌스러운 간판을 애써 무시하려 하며 2층으로 올라가서 목도한 내부 풍경은 ‘아, 단식원이라는 곳에 가면 이런 분위기겠구나’ 싶은 느낌을 줬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인테리어의 사치도 누리지 말아야 하는 걸까? 촌스러운 ‘갈색’의 테이블과 의자, 기다란 테이블 위에 차린 힘없어 보이는 풀들, 입구에서 판매하는 불량 식품 같은 고기 대체용 ‘비건’ 식품들. 2060년 뉴욕, 모든 자유가 통제되고 즐거운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금지하는 내용의 SF영화의 우울한 한 장면 같았다. 아마도 주인공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얼굴의 니컬러스 케이지일 테고. 지구가 망하는 날 한 그루의 사과나무 따윈 됐고 마블링 잘된 한 마리의 소를 잡아먹는 걸 평소의 신념으로 여긴 나로서는 시작부터 못마땅했다. 차라리 소이퀘사디아나 허브 감자구이 같은 건 괜찮았다. 하지만 밀불고기는 성분을 알고 먹어서인지, 가짜를 먹는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걸 왜 해야 하지? 왜 고기를 먹으면 안 되지? 조류 독감 때 잠깐 치킨 안 먹고 광우병 파동 때 잠깐 소고기 안 먹고 돼지 독감 때 잠깐 돼지고기 안 먹고 살아온 오래된 식습관은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짜증과 분노를 촉발했다. 왠지 저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상추쌈에 검은콩 된장을 발라 먹는 여자도 불행해 보였다.
채식 뷔페 오세계향에서의 식사는 거식증 걸린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아무 문제없었다. 그 여자는 비정상적으로 말라 있었다. 평소 같으면 먹는 데만 집중했을 텐데 여기에 오니 괜히 주변을 흘긋거리게 됐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어떤 일상적이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오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종교라는 강력한 수단 없이는 고기를 금하기 힘든 걸까? 고기뿐만 아니라 해물, 우유, 달걀까지 쓰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먹는 음식에 정말 그런 게 하나도 안 들어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밀만두를 우물거리면서 계속 나는 되물었다.
“이거 뻥 아냐?” 그만큼 음식은 괜찮았다. 콩으로 만든 양념 스틱과 매실탕수, 콩불고기는 소스 때문인지 고기 같았다. 하지만 이곳의 요리사에게도 넘지 못할 문턱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너비아니였다. 소스가 아닌 고기의 질감이 살아 있어야 하는 너비아니는 이 요리사가 과연 평생을 연구한다고 해도 비루한 재료 콩만 가지고는 고기 맛을 내긴 힘들 것이다.
이든 밸리에 가기 전날에는 입맛을 다시며 TV에서 한 근에 30만원 한다는 일본 최고의 ‘마쓰자카 소고기’ 관련 프로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최고의 사료와 최고의 환경에서 사육한 그 소고기를 먹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고기를 입에 넣은 그들은 입을 맞춘 듯 말했다. “스고이! 입에서 살살 녹아요.” 어찌나 살살 녹는지 육회로 만든 스시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올 때는 TV를 꺼버렸다. ‘난 내일 몸에 좋은 채식을 할 거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야 했다. 역시 종교적인 냄새가 가득 나는 이든 밸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고기를 먹지 않는 곳이었다. 콩고기를 넣은 떡볶이는 먹을 만했다. 하지만 메뉴의 선택이나 맛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할 수 없는 구내식당 같은 이런 곳에서는 채식을 시작해보려 하다가도 도망갈 게 뻔하다. 국내의 채식 식당은 다른 게 아니라 인테리어부터 바꿔야 한다. 아니, 어쩌면 고기를 대체한 비건 식품을 먹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인테리어 비용이 안 나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면서 울었어도 ‘워낭소리’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 먹는 게 우리나라의 ‘육식’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기 때문에 오는 환경오염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겠다. 죄송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칭하이 무상사님. 일단 마감으로 지친 오늘은 삼겹살 3인분 좀 먹고 다시 채식을 생각해보겠습니다. NAH JI UN
채식 같은 소리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고기 반찬에 더 집착했다. 밥을 안 먹어 큰일이라는 옆집 아줌마의 딸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오는 손녀딸을 보다 못한 할머니는 당시 ‘5일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콩고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고기 맛을 낸 모조품을 먹고 있어야 하는 게 너무 억울해서 일기장에 적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1백 년 가까이 살다 간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다음과 같은 채식의 ‘유일한 단점’은 가늘고 긴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그럼 나도?’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65세지만 나는 85세인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았고 죽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죽지 못한다. 나는 영원히 살게 될까 걱정이다.”
처음 뉴스타트에 들어섰을 때 아파트 반상회에 참석한 기분이었다. 커다란 선캡을 쓰고 뒤로 뛰는 운동을 하다 오신 듯한 40~50대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식사하는 걸 보니 ‘건강식’이라는 믿음은 갔다. 접시를 들었는데 허브 감자구이와 버섯 토마토 스파게티 같은 메뉴들 말고는 보통 시골 밥상 차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쑥버무리를 보며 무척 반가워하는 동안 나는 밀불고기를 신경질적으로 쌓아올렸다. 밀로 만든 고기라…. 보기엔 불고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불고기 양념 속에서 구미를 당겨야 할 고기 냄새가 빠져 있다. 심호흡까지 한 번 하고 밀불고기를 씹었는데 밀은, 역시 밀이었다. 달걀과 햄 대신 두부를 넣은 잡곡김밥, 이곳의 인기 메뉴라는 소이퀘사디아, 채소로 속을 채운 양배추쌈은 그럭저럭 먹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조미료를 넣지 않는 웰빙 식당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인지 싱거워도 너무 싱거운 들깨 미역국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곳곳에 써놓은 문구 때문인지, 다 먹어치운 밀불고기 때문인지 속이 불편했다. 평소 위가 좋지 않은 편이라 밀가루를 멀리하라고 병원에서 그랬는데, 역시 밀고기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임이 분명하다.
채식 식당을 찾으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대만불교를 알리러 온 불광 신사에서는 콩까스와 만두가 주 메뉴인 ‘적수방’을 운영하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새생명건강동회호회’라는 채식 식당을 열었으며, 가장 오래된 채식 전문점인 ‘SM 채식 뷔페’는 식당 전경에서 불편한 느낌을 줄 정도로 수행 불교의 색채가 강하다. 분당에 있는 ‘이든밸리’도 이름을 자세히 보면 ‘에덴동산’이란 뜻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하는 곳으로 음식 맛에 대한 리뷰보다 ‘친절한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막상 가보니 교회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에 딱 1만원 값을 하는 뷔페 차림이었지만, 음식들이 싱겁지 않아 밥과 반찬을 몇 번씩 먹었다. 식당 마감 시간에 가서 다 식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콩고기를 넣은 조랭이 떡볶이와 라자냐는 느끼한 맛이 없었다. 예상한 것보다 ‘편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계산대에서 <빛을 전한 사람들>이란 책을 선물로 준다. 아, 이 책만 아니었어도 주변에 권했으련만.
채식 뷔페라기엔 비건 식품이 부족한 두 군데와 달리 ‘채식 뷔페 오세계향’은 고기 없인 밥 못 먹는다는 사람의 불평도 잠재울 만큼 메뉴가 다양했다. 콩까스는 물론이고 매실 탕수채, 유린기, 너비아니 등 뷔페 식당에 있는 음식은 다 있었다. 청포묵을 얹은 스시를 보며 ‘아직 생선의 맛은 대체하지 못했군’이라고 생각했지만, ‘고기 대체용’ 재료로 만든 메뉴의 대부분은 씹는 질감과 맛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신기한 건 편육처럼 만든 편채. 생김새는 다른 메뉴보다 가짜 느낌이 났지만 막상 먹어보니 진짜 편육 맛이었다. 담백하고 매콤한 짬뽕을 먹을 때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고, 달걀과 우유, 거기에 콜레스테롤, 트랜스 지방, 방부제를 다 빼고도 이 메뉴들이 다 가능하다는 건가? 삼겹살을 먹으면 간질거리는 아토피 체질인데도 거들떠보지 않던 채식이 다시 보였다. 생크림 케이크가 나오기 전에 먹던 느끼한 케이크처럼 크림과 빵이 모두 뻑뻑한 조각 케이크만 빼면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없다. 그런데 항상 범하게 되는 실수는 ‘과식’이다. ‘고기가 아니니까’라는 생각은 과식과 소화불량을 남겼다. 대체, 고기가 뭐라고 이렇게 ‘대체 고기’를 많이 먹게 만든단 말인가. KIM GA 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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