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 유기의 쇼핑의 지혜

요리 전문가의 충고, 바닥의 낙인을 확인하라
냉장고 없던 그 옛날. 우리네 선조들이 음식 고유의 맛을 살리고, 신선하게 먹기 위해 썼다는 놋그릇. 뜨거운 열을 가해 두들겨 만들었다고 해서 방짜 유기라 한다. 무겁고 관리하기 어려워 한동안 시들했던 놋그릇이 다시금 주목 받는 이유는 음식의 독성을 가려내는 유기의 특성도 한몫하지만, 담았을 때 더욱 정갈해 보이는 매력 때문이다. 울산에서 요리 전문가로 활동 중인 조민정 씨 역시 납청 유기로 알려진 이봉주 선생의 유기 그릇을 사용하고 있는 마니아.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을 담으면 그릇의 색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먹는 음식만큼은 질 좋은 그릇에 담아 내고 싶었던 것이 지금까지 유기를 사용하게 된 이유다. 유기의 좋은 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관리가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구입을 망설였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수업이 없는 날이면 거창, 문경 등 유기 공방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열성 팬이 되었다. 많이 쓸수록 좋은 제품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만, 유기를 오래 써본 그녀도 사실 눈으로만 좋은 유기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공방과 연결된 믿을 만한 전문 매장을 통해 제품을 구매한다. 그릇 도매상에서 유기를 구입하면 종종 낙인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유기를 만드는 원재료의 비율이 적합지 않거나 주물로 찍어낸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가격은 저렴하겠지만 유기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처음 유기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한꺼번에 모든 식기류를 교체하지 말고 수저, 종지 등 작은 식기류부터 차근차근 교체하라는 것이 방짜 유기 마니아인 그녀의 조언.


방짜 유기의 쇼핑의 지혜
안성마춤 유기 공방에 다녀오다
남안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공장 단지로 들어서면, 큰 공장들 사이로 단층으로 된 허름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 무형 문화재 77호로 지정된 김근수옹과 그의 아들, 손자 이렇게 3대가 맥을 이어가고 있는 안성마춤 유기 공방이 바로 그곳. 유독 안성에서만 유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이 지역 유기가 유명한 것은 주물 유기 그릇을 만드는 데 적합한 갯벌 흙과 장사꾼이 많이 모여드는 물류의 집합지였기 때문이다. 쓸수록 윤이 나는 멋스러움에 반하지만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가격 또한 고가이기 때문에 주문 생산 형태로만 제작한다. 한국전쟁 이후 유기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졌고, 취사 연료가 연탄에서 가스로 바뀌면서 가스에 약한 유기는 스테인리스로 대체되면서 그 수요가 줄어 20여 개가 넘는 공방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곳 ‘안성마춤 유기 공방’만 남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유기는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로 나뉘는데,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섞은 금속을 녹여 손으로 두들기고 때려서 만드는 기법이고, 주물은 일정한 틀에 쇳물을 부어 그릇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방짜는 유기고 주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만드는 기법과 사용하는 금속만 다를 뿐, 모두 유기 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맞단다. 가장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78:22의 황금 비율로 합금한 것. 1,000℃가 넘는 용광로에서 구리와 주석을 녹여 합금한 다음 둥근 금속 덩어리를 만들어 600℃가 넘는 불길 속에서 담금질하면서 유기의 모양을 만들어 국내산 인증 마크 즉, 낙인을 찍는 과정을 거친다. 얼룩덜룩하게 녹슨 자국이 남아 있는 표면을 깎아내는 가질 작업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유기 그릇이 완성된다. 유기 공방에서는 떨어뜨렸을 때 깨지지 않고 오래 사용할수록 윤이 나야 좋은 유기라고 한다. 사실, 직접 사용해보기 전까지 유기의 품질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장 믿을 만한 확실한 표시는 주석과 구리의 합금 비율을 제대로 지킨 유기인지, 국가에서 인정한 장인이 만든 작품이라는 인증 마크, 즉 낙인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다.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구입 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가치와 생명력이 달라지는 게 바로 방짜 유기라는 것을 기억할 것.기획 민영 | 포토그래퍼 임익순 | 레몬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