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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김치의 상큼한 맛, 오랫동안 즐기려면 |
글쓴이: 톡 쏘는 김치의 상큼한 맛, 비올레트 | 날짜: 2012-09-17 |
조회: 7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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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우습게 보지 마." 강순의 할머니는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40년이 넘도록 김치를 담가오며 자신만의 '김치 과학'을 만들었다. 11일 오전 할머니가 자신의 집이기도 한 경기 광주시 '강순의 명인의 김치연구소'에서 그릇에 담아 내놓은 잘 익은 김치. 광주(경기)=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 고전경험론 철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왜 죽었을까? 바로 닭 때문이다. 그는 1626년 3월 눈이 내리자 눈을 이용한 냉동 방법을 연구하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구덩이에 생닭 한 마리를 파묻고 돌아온 그는 이때 얻은 독감으로 시름시름 앓다 숨을 거뒀다.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경험주의자다운 마지막이었다. 베이컨은 죽기 전 일기에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적었다. 이 때문에 그는 '실험과학의 첫 번째 순교자'로 불린다.
40여 년 동안 김치를 담근 강순의 할머니(65)는 '경험주의 김치연구가'다. 그는 온몸으로 김치를 배웠다. 지금도 마당 한쪽 김장독에 3년, 5년 된 김치를 넣어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비단 한복 곱게 차려입고 나오는 종갓집 며느리는 다 거짓부렁이여." 할머니의 연구는 1969년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 시댁은 나주 나씨 종가였다. 종갓집 며느리 생활은 힘들었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만 자면서 30여 명의 대식구를 챙겼다. 다리에 힘이 풀려 마루에 올라서지 못할 정도였다. 언제 누가 부를까 걱정돼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다.
한참 옛날이야기를 하던 할머니가 김치를 내왔다. 빨간 양념과 푸른색 배춧잎이 조화를 이룬 배추김치 반 포기와 고추씨로 양념한 노란색 백김치, 그리고 주홍 빛깔의 물김치였다. 거기에 잡곡밥 한 그릇. 기자는 순식간에 김치와 밥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김치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진정한 명품 손맛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김치 담글 때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할머니가 퉁명스럽지만 정감어린 말투로 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중요허지. 김치를 담그는 과정은 재료 선택부터 양념까지 모든 게 다 연관돼 있으니까. 김치는 경험이거든."
○ 소금, 김치의 시작
현재 강 할머니의 '김치연구소'는 경기 광주시 외곽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 두 번의 갈림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닿는다. 허리 높이의 낮은 대문 옆에는 소금 포대가 쌓여 있었다.
소금이 왜 건물 밖 널찍한 곳에 놓여 있을까. 이것은 집 안쪽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금을 바싹 말리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말했다. "소금은 천일염을 써. 3년 동안 간수(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물)를 뺀 다음 햇빛에 말려 쓰지. 그래야 쓴맛이 나질 않어."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했을 때 실제로 김치가 제일 맛있었단다.
사실 쓴맛은 천일염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 때문에 생긴다. 간수에 들어 있는 염화마그네슘(15∼19%)과 황산마그네슘(6∼9%), 염화칼륨(2∼4%)은 모두 쓴맛을 낸다. 그렇기 때문에 간수가 빠지지 않은 천일염을 쓰면 쓴맛이 나고 김치 맛이 나빠진다.
"소금은 굉장히 중요혀. 나도 요즘 다시 한 번 느꼈어.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소금 두 포대를 선물 받았어. 소금회사 사장이 자기 제품을 사용해 보라면서 줬지. 그 소금으로 김치를 했는데 쓴맛이 나고 배추가 물러져서 못 쓰게 된 거야. 결국 죄다 버렸지. 그러고 나서 소금 맛을 봤는데 너무 짠 거 아니겠어. 중국산이랑 국산을 섞은 거지."
중국산 소금은 국산 소금보다 염도가 높다. 국산 소금과 같은 양을 넣으면 김치의 염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 높은 염도는 절임배추와 김치의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할머니는 중국산과 국산을 섞은 가짜 국산 소금을 판별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국산 소금은 알갱이가 또렷한 사각형이고 흰색이야. 처음에는 짜지만 뒤에는 살짝 단맛이 돌아. 그런데 혼합 소금은 알갱이가 깨져 있거나 크기가 일정하지 않지. 어떤 것은 너무 곱게 갈려 손에 묻어나기도 허고. 맛도 너무 짜서 뒷맛은 혀가 얼얼할 정도여."
○ 요리책대로? 김치 맛 그때그때 달라져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국에서 몰려드는 제자들을 맞는다. 주부, 식당 사장, 유명한 요리 전문가들이 찾아와 김치를 배웠다. 수업은 1년 코스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는 "1년을 배워서는 김치를 다 배웠다고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100명이 와서 1년 동안 열심히 김치를 배워도 그중 20명은 끝내 제대로 된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고 했다. 재료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다.
"예를 들어 김장배추를 들여왔는데 그놈들이 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고 해 봐. 이 배추로 김장을 하려면 소금을 평소보다 많이 넣어서 물을 많이 빼줘야 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기가 계속 새어 나와서 김치 맛을 망친단 말이여. 유난히 큰 배추로 김장을 할 때도 소금을 많이 넣어야 돼. 큰 배추가 소금을 많이 먹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겄어?"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추를 절일 때 소금을 많이 쓴 만큼 젓갈 등의 양념은 그만큼 덜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치가 너무 짜서 먹을 수 없어진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할머니는 말했다. "요리책처럼 정량만 넣으면 김치를 할 때마다 맛이 달라져." 재료의 상태와 특징을 파악해서 단계별로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추를 비롯해 고춧가루, 마늘 같은 재료들이 김치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의 1996년 학술자료에 따르면 고추, 마늘, 생강을 넣은 김치는 섭씨 15도에서 10일 동안 발효했을 때 아무것도 넣지 않은 절임배추보다 산도가 0.9%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춧가루와 마늘이 김치 발효에 도움이 되는 유산균의 번식을 도와줘서다. 고춧가루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은 김치가 산패(酸敗)돼 시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 유산균, 톡 쏘는 맛의 비결
"김치는 톡 쏘는 맛이 살아 있을 때 가장 맛있어. 여기서 좀 더 익으면 군내가 나게 돼. 그러니까 김치가 잘 익었을 때 더 익지 않도록 막아주는 게 중요해. 적당히 익었는지를 어떻게 아냐고? 김치국물에서 조금씩 공기방울이 올라올 때 맛을 한번 보면 되는 거야."
'톡 쏘는 맛'을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면 '류코노스톡 균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김은정 LG전자 김치냉장고사업실 수석연구원은 "김치에는 200종 이상의 유산균이 있는데 이 중 류코노스톡 균이 시원하고 새콤한 맛을 만든다"고 말했다. 2000년 한홍의 인하대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류코노스톡 김치아이'와 2003년 서울대 미생물연구소의 분석을 통해 증명된 '류코노스톡 시트리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유산균은 김치 발효 초기에 많이 생성되며, 다른 유해한 세균이 늘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방패 역할도 한다.
김치의 발효가 마무리되면 '락토바실루스'라는 유산균의 일종이 빠르게 늘어난다. 이 균은 김치를 시어지게 해 맛을 해친다. 이 과정마저 지나면 김치 속에 잡다한 세균이 늘어나 산패가 시작되고 군내가 난다.
"우리나라 김치가 세계 5대 식품이라는데 말여.(미국 건강전문지 '헬스'는 2006년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도 잘 몰러. 김치를 우습게 봐서도 안 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정말 만들기가 쉬워. 건강에도 좋고. 내가 2009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할머니 속은 40대'라 그려. 다 김치 덕분이지."
김 연구원은 "김치는 염증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증진하는 데다 항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농촌진흥청과 아주대병원은 공동 연구를 통해 잘 익은 김치가 비만을 막고 혈압을 내려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최고의 증거는 바로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치가 과학적으로 훌륭한 음식이라는 최고의 증거는 할머니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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