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소도시 본(Beaune)은 세계적 와인 '로마네 콩티'를 생산하는 대표적 와인 산지다. 이곳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클로 드 부조'성(城)에 지난 28일 저녁 100여명의 부르고뉴 상공회의소 회원들과 부르고뉴 와인 양조장 소유주들이 모였다. 파·계란·양파 등 5색 야채로 꾸민 대하구이를 맛본 마르탱(54)씨는 "신선한 화이트 와인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한식(韓食)을 처음 맛본다는 그는 어색한 젓가락질로 비빔밥과 해물 전을 뚝딱 해치웠다.
'한국의 여름 밤, 수라상'이란 이름의 이날 행사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식 알리기에 힘쓰는 '우리문화세계로(G3C)'의
한상인(62) 대표가 마련한 것이다. 한 대표는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린 한창수 개성상회 회장(2000년 작고)의 딸.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대에서 교수로 일하며 한국 문화를 5년간 가르쳤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의 매력에 빠졌던 한 대표는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인들에게 한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하곤 했다. 발효 음식이 기본인 한식은 와인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불고기·김치를 곁들여 와인을 즐기는 주변의 프랑스 친구들도 점점 많아졌다.
"문득 와인을 한국에 소개할 게 아니라 한국 음식을 프랑스에 전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통이 깊은 한국 문화와 프랑스는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거든요."
한식은 어릴 때부터 한 대표의 관심사였다. 그는 "아버지는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개성 음식을 대접하고 판소리·창을 듣는 걸 무척 즐겼다"면서 "어릴 적부터 한식과 한국 전통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다"고 했다.
한 대표가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한식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8년부터. 2009년 서울에 거주하는 프랑스 주요 인사를 초청해 한식 소개 행사를 가졌다. 2010년엔 부르고뉴에서 현지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첫 한식 행사를 열었다.
한 대표는 "부르고뉴는 최고급 와인 산지일 뿐 아니라 달팽이 요리 등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며 "이곳에서 한식이 성공하면 세계적으로도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에 대한 부르고뉴 지역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브누아 드 샤레트 부르고뉴 상공회의소 회장은 "내년부터 한식 행사를 우리 상공회의소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정기적으로 열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프랑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 대표의 딸 이선영씨가 진행을 맡았다. 판소리와 가야금 연주 등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판소리 '흥부가'가 진행될 때 프랑스인들이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한 대표는 "한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수"라며 "한식 행사를 통해 한국과 프랑스가 더 친밀해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