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가 대게잡이 철이다. 대게잡이가 가능한 이 시기에 영덕, 울진, 포항 구룡포, 삼척 등 동해안 포구는 주말마다 관광객들로 붐빈다. 담백 쫄깃하고 향긋한 게 맛에 이끌려 온 이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게눈 감추듯 대게 살을 빼먹고 게딱지 내장을 발라 먹는다.
◆ 영덕 대게, 동해에서 만나는 겨울의 진객
언제부터인가 대게를 놓고 말들이 많아졌다. 대게 전문 식당에 가면 국내산이냐 러시아산이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똑같이 대나무처럼 다리가 길고 배 부분이 흰색이어도 맛이 다르다. 영덕군과 울진군이 서로 대게의 원조를 주장하며 벌이는 옥신각신도 수년째 진행 중이다. 이젠 구룡포까지 가세해 전국 최대 대게 생산지임을 내세우고 있다.
영덕 강구항은 지명도 면에서 국내 최고의 대게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다. 그 명성은 포구에 닿기 전에 미리 체감할 수 있었다. 7번 국도를 따라 강구항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변 식당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형태의 게 간판을 내걸어 놓았다. 강구항 포구로 진입하는 다리 입구에도 너비가 족히 10m는 돼 보이는 골리앗 게 모형이 패루처럼 세워져 있었다.
강구항 포구는 대게 식당으로 넘쳐났다. 영덕군에 등록된 식당만 100여 개에 난전과 간이식당 등을 포함하면 200개가 족히 넘었다. 여기에 2004년 문을 연 5층 규모의 동광어시장까지 포함시키면 그야말로 '전국 최대 대게 타운'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강구항에 대게 식당은 부지기수이지만 먹는 방법은 하나였다. 손질이나 양념 없이 그냥 쪄서 먹었다. 대게 식당 앞은 어디나 찜통 안에서 사우나를 하고 나온 대게가 몸을 식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찜과 달리 대게를 날로 먹는 경우가 있는데 ‘홋개’가 이에 해당된다. 홋개는 탈피 직전의 대게로 다리 마디를 꺾어 살을 빼면 말단까지 쏙 빠져나온다.
대게는 수심 300m 안팎의 심해에서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데 몸통 너비가 9cm 이상이어야 잡을 수 있다. 기준에 미달되는 것은 그물에서 떼어내는 족족 바다로 던져진다. 수산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빵게’라 불리는 암컷도 포획이 금지돼 있다.
대게 맛은 영덕산, 연근해산, 수입산이 다 달랐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게 당연지사지만, 강구항 어민들은 강구 앞바다에서 잡힌 대게가 가장 맛이 좋다고 강조했다. 강구 바다는 바닥이 사질(모래)이라 대게가 쫄깃하고 향긋한 단맛이 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뻘이 많은 일부 지역 대게는 껍데기가 두껍고 맛이 텁텁해 '타박대게'로 불린다고 했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이 영덕산과 연근해산의 맛을 구분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영덕산과 가격이 헐한 수입산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원산지별로 주문해 쟁반 위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맛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먹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미묘할 수도 있다.
강구항에서 좋은 대게를 저렴하게 먹으려면 약간의 발품과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우선, 덩치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대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무작정 큰 놈에게만 눈길을 주다가는 다리에 물만 출렁거리는 '물게'를 만날 공산이 크다. 대게 배를 눌러보아 물렁물렁한 것은 피해야 한다. 대게는 같은 크기라도 속살이 꽉 차면 가격이 2~3배 올라간다. 이른바 '박달대게'이다. 박달대게는 살이 박달나무처럼 야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디에서 잡히든, 크기가 어떻든 살이 차 있으면 박달대게로 분류된다. 뱃속이 야무지게 꽉 들어차고 무게가 1.5㎏에 육박하는 박달대게의 위판 가격은 쌀 1가마니 값에 버금간다.
강구항에선 관광객이 대게를 직접 구입해 식당에 가져가 자릿값을 내고 먹는 게 보편적이다. 대게를 쪄주는 비용은 구입가의 10%이며 여기에 야채, 양념값이 몇 천 원 추가된다. 포구 안쪽에 자리한 동광어시장에선 대게 선택의 폭이 확 넓어진다. 1층에 수족관을 갖춘 60여 곳의 대게 판매점이 운영된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청게(너도대게)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청게는 생김새와 맛이 대게와 비슷한데 가격은 절반 정도이다.
수족관에서 노니는 대게 중 상품가치가 높은 몇몇은 집게다리에 저마다 이름표를 하나씩 달고 있었다. 이른바 '브랜드 대게'이다. 몸집이 꽤 큰 박달대게 한 마리는 '진품'이라는 붉은 표기와 함께 원산지, 상호, 전화번호가 적힌 황색 비닐 완장을 차고 있었다. 가장 믿을만한 브랜드는 강구근해자망선주협회의 플라스틱 명찰로 해마다 색깔이 바뀌는데 올해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 글씨와 바코드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