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많은 청춘들의 쇼윈도나 들끓는 젊음의 열기만을 떠올린다면 아직 홍대 일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발걸음을 돌리면 더없이 차분하고 여유로운 얼굴을 한 상수동이 자리하고 있다. 햇살 좋은 11월의 어느 날, 상수동에서 즐기는 한적한 오후.
젊음의 발랄한 에너지와 밤이면 증폭되는 열기, 홍대 일대가 혈기왕성한 청춘들의 운집소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들끓는 혈기와 동반되는 주체할 수 없는 어지러움과 소란스러움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홍대 일대의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홍대 앞(흔히 말하는 홍익대학교 앞 놀이터 부근과 전철역 부근)에 들어선 커피 전문점에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지 않으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이와의 대화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시끌벅적한 열기를 피해 홍대 토박이들이 요즘 발걸음을 돌리는 곳이 상수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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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수역 2번 출구에 자리한 카페 '호호미욜'. 실제 폭스바겐 미니 버스를 구입해 주방 겸 카운터로 탈바꿈시켰다. 홈 메이드 머핀과 핸드 드립 커피, 미니 식빵이 맛있다. | |
홍대 일대는 서교동과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을 아우른다. 그중 상수동은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서쪽, 즉 극동방송국 뒤쪽 동네와 합정역으로 향하는 부근을 말한다.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을 향해 내려가다 어느 순간부터 떠들썩한 술집과 간판들이 잦아들었다 생각되는 즈음일 거다. 극동방송국 맞은편으로 보이는 북 카페 ‘토끼의 지혜’는 책 좋아하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 그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오면 1년 365일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일본 라면집 ‘하카다분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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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목 구석구석 이어지는 카페와 벽화. 2 오래된 문구점 옆 벽화와 장난감 뽑는 기계.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3 상수역 1번 출구에 자리한 빈티지 소품점 ‘at corner’. 자신만의 핸드메이드 캔버스 가방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 |
영업시간은 오후 12시부터 2시, 5시부터 자정까지. 적어도 개점 시간 30분 전에는 가야 긴 기다림 없이 진한 일본 라면을 맛볼 수 있다. 그 앞 오래된 문구점이며 점잖은 문패가 맞이하는 주택들, 하굣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선명한 상수동은 어쩌다 오토바이 한 대 지나는 소리에 골목이 흔들릴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는 조그만 명소들이 비범해 뵈는 것은 홍대앞과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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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수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cafe d’. 위층에 작업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 홍대에서 바라본 '와우 어린이 공원'. 상수동 주민들의 놀이터다. 3 아직 재개발 되지 않은 작은 집이 정겹다. | |
조그마한 주택과 빌라가 모여 있는 상수동에는 유난히 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많다. ‘카페 살롱’도 그중 하나. 널찍한 가정집을 개조해 집인지 카페인지조차 헷갈리는 이곳은 평범한 골목을 커피 볶는 냄새로 가득 채운다. 상수역 2번 출구에 자리한 ‘카페 룸엔드’도 마찬가지. 집에서 얻는 편안함과 붐비지 않는 한적함에 젖어 있노라면 홍대의 번잡스러움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좁은 계단과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래된 집들까지, 조용하고 고즈넉하기까지 한 이곳은 ‘홍대 앞’치곤 너무 낭만적이다. 특히 가을볕 가득한 오후, 주택가 사이사이 작은 카페들을 찾아 걷는 여유는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픈 즐거움이다. 상수동이 홍대보다 낡고 투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상수동의 오후는 홍대의 밤보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상수동 가는 길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서 내려 극동방송국을 지나 홍대 정문 쪽으로 올라가는 큰길 주변으로, 오른쪽 상수동 일대와 왼쪽 합정역 방향 일대. 반대로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 쪽으로 내려가며 골목골목을 즐길 수도 있다.
5 상수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cafe d’. 위층에 작업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6 홍대에서 바라본 '와우 어린이 공원'. 상수동 주민들의 놀이터다. 7 아직 재개발 되지 않은 작은 집이 정겹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