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떨어지면 영업 끝"이라는 전국 5대 짬뽕집 가보니…
짬뽕이 나왔다. 와인의 향을 맡듯 먼저 그릇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국물 한 숟가락을 떠 테이스팅(tasting)을 한 뒤, 온갖 고명과 면을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순간 입속에 대양(大洋)과 갯벌, 흙과 농부의 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이 모든 맛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wok)의 무쇠가 그을려 낸 불의 맛이었다. 청양고추의 아린 맛까지도 다스리는 불맛은 최고의 짬뽕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짬뽕 5대 천왕'으로 불리는 전국 5대 짬뽕집에 다녀왔다. 짬뽕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5대 짬뽕'으로 이름난 곳들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어, 모두 순회하는 데에 꼬박 사흘이 걸렸다. 이들 대부분이 '재료 떨어지면 영업 끝'이라서, 오후 3시에 가도 짬뽕을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중국집 주방장 공력(功力)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짬뽕의 5대 명가는,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에 흩어져 있었다. 혹자는 "5대 짬뽕은 지역별 안배를 거쳐 경기·충청·경상·전라·강원도에서 각 1곳씩 뽑힌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또는 "조리법이 워낙 달라 이미 짬뽕이 아닌 제3의 음식이 돼버렸다"는 시식평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인터넷에서는 이들 다섯 집을 '5대 짬뽕'으로 통칭하며, '짬뽕 순례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특히 '최사장의 짬뽕순례'라는 블로그는 '5대 짬뽕'을 비롯해 8일 현재 전국 65개 짬뽕집의 시식기가 올라와 인기 높다. 이 블로그의 주인인 최원석(24)씨의 시식평을 더해 이들 짬뽕 명가를 가나다 순으로 소개한다.
- ▲ 짬뽕은 육수·면·고명 맛으로 결정된다. 워낙 자극적인 맛이어서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들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왼쪽부터 1 군산 복성루, 2 강릉 교동반점, 3 공주 동해원, 4 평택 영빈루, 5 대구 진흥반점의 짬뽕. / 군산·대구·평택·공주·강릉=한현우 기자
입술 반경 3㎝까지 '얼얼' 매운맛도 이 정도면 예술
1 교동반점
(강원도 강릉시 교동·033-646-3833)
시골 터미널 앞 허름한 밥집을 연상케 하는 이곳의 메뉴판엔 '짬뽕면', '짬뽕밥', '공기밥', '군만두' 네 가지밖에 없다. 짬뽕의 비주얼이 가장 허약한 집인데, 국물 위로 조금 솟은 고명 더미 위에 참깨와 후춧가루가 산발(散發)돼 있다. 국물은 빨간색보다 갈색에 가깝다. 이것은 이 집이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고춧가루 덕분으로 보인다.
교동반점의 짬뽕은 맵다. 특히 매운 고춧가루로 낸 국물과 고명 위에 뿌린 후춧가루가 섞이면서 텁텁하고 뻑뻑하게 맵다. 그 매운 정도가 서울 무교동 낙지볶음 수준에 이른다. 짬뽕이 처음 나왔을 때는 고명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면을 다 먹고 공기밥을 추가로 말아서 다 긁어먹을 때까지 홍합과 바지락, 오징어가 끊임없이 숟가락에 걸려 올라온다. 돼지고기는 다른 집보다 잘게 썰어져 해물들 사이에 숨어있다. 야채를 국물과 함께 오래 삶았는지 매운맛 끝에 단맛이 매달려 있다. 면에는 차지다 못해 떡을 먹는 듯한 쫄깃함이 살아있다.
처음 국수를 뜰 때 시작된 매운맛이 마지막 국물을 훑을 때까지 계속 상승해, 숟가락을 놓을 때쯤엔 입술 주위 반경 3㎝까지 얼얼하다. 그러나 요즘 서울에서 유행하는 '폭력적 매운맛'과는 유가 다르다. 아마도 이 매운맛이 이 집 짬뽕의 요체인 듯하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30분이지만 오후 4시 전에 가야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