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영화 <프렌치 키스>(1995년 작)는 변심한 약혼자를 찾아 프랑스에 온 순진한 미국 여성 케이트(멕 라이언 분)와 포도원을 운영하며 건전한 삶을 살려는 건달 뤼크(케빈 클라인 분)가 좌충우돌 소동을 통해 사랑을 이뤄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에서는 프랑스의 파리, 칸 이외에 뤼크의 고향인 프로방스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프로방스는 로제 와인으로 유명한 와인산지다. 뤼크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포도원에서 케이트는 와인을 접하게 되며 이때 그의 도움을 받아 와인 향기를 맡는 법을 배운다.
와인의 향기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아로마와 부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로마는 희랍어에서 유래하며 양념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향기라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와인은 보통 수백 개의 아로마를 지니고 있으며 와인 1ℓ에 포함된 아로마 성분은 0.8~1.2g 정도이다. 이 아로마 성분은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에 의해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와인의 아로마는 포도품종, 떼루아르, 빈티지, 그리고 양조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와인의 아로마는 일반적으로 3가지로 분류한다. 원래부터 포도가 지니고 있는 향기를 1차 아로마, 발효 과정 중에 새로 생기는 향기를 2차 아로마, 숙성 과정 중에 생기는 향기를 3차 아로마라고 부른다. 좋은 와인일수록 2차 아로마와 3차 아로마가 풍부하다.
부케는 원래 작은 꽃다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와인의 복합적인 향기를 부케라고도 한다. 아로마와 부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에서는 3차 아로마를, 호주에서는 오히려 1차 아로마를 부케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1~3차 아로마를 통틀어서 부케라고 부르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와인을 잘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와인의 향기를 맡을 줄 알아야 한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로마와 부케를 잘 표현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와인의 향기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식별하기 어렵지만 테이스팅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색을 통해 와인을 평가하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와인을 후각으로 느끼는 것도 배울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후각적인 능력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후각적인 경험에도 차이가 있고 맡은 향기를 표현하는 언어능력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착안하여 와인 아로마 키트와 와인 아로마 휠이 등장하게 됐다.
후각 기능 향상시키는 와인 아로마 키트 와인 아로마 키트란 와인에 담긴 아로마들을 액체의 형태로 화학적으로 만들어 향수의 샘플처럼 작은 병에 담아놓은 세트를 말한다. 개별적인 아로마를 후각적으로 인지하고 기억하게 함으로써 전형적인 와인의 향기를 정확하게 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출신인 장 르누아르는 여러 해에 걸친 노력 끝에 1981년 와인 아로마 키트인 르 네 뒤 뱅(Le Nez du Vin)을 개발했다. 와인 전문가와 와인 애호가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르 네 뒤 뱅은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의 일반적인 향뿐 아니라 결점향 등 다양한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장 르누아르의 성공과 많은 와인 교육기관의 등장을 배경으로 여러 유사 상품과 색다른 상품도 등장하게 됐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게누스라이히(Genussreich)사에서 생산하는 와인 아로마 키트인 아로마바(Aromabar)와 캐나다의 와인 어웨이크닝스(Wine Awakenings)사에서 생산하는 아로마 키트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구분뿐 아니라 포도품종 별로 구분하여 전형적인 아로마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로마라인이 아로마 빌(Aroma Ville)이라는 와인 아로마 키트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으며 중국의 비노필(Vinofil)사도 아로마스터(Aromaster)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와인 아로마 키트는 고가의 와인을 구매하거나 와인을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 판촉물로 자주 사용되는데 독일의 게누스라이히사는 아예 초보자를 위하여 버라이어틀 와인 한 병과 함께 선물 세트로 상품을 구성하고 있다.
- ▲ 와인향을 캡슐로 만들어 판매하는 와인 아로마 키트.
와인 아로마 키트와는 달리 와인 아로마 휠은 국내에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와인의 테이스팅에서 유용한 툴로 작용하는 와인 아로마 휠은 노블(Ann C. Noble)이 미국 캘리포니아 UC 데이비스 대학에서 양조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980년대에 개발했다.
노블 교수의 와인 아로마 휠은 스틸(비발포성) 와인용과 샴페인 제조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용 등 2종류가 있는데 스틸 와인용의 아로마 휠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모두 6개국어로 번역돼 판매되고 있다. 스틸 와인용 아로마 휠에는 약 100개의 아로마가 그룹, 상하의 카테고리 별로 분류돼 있어 체계적으로 아로마를 느끼고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일에서는 노블의 아로마 휠이 독일 와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울리히 피셔사와 독일 양조학자 협회의 공조에 의해 화이트 와인용과 레드 와인용 아로마 휠을 개발했다. 독일 와인의 판촉물로 많이 사용되는 이 아로마 휠들에 대한 저작권은 독일와인협회와 미국의 노블 교수가 공동으로 행사하고 있다. 남아공의 피노타지 협회는 피노타지 포도 품종에 적합한 아로마 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남아공의 대표 포도품종인 피노타지의 이해를 돕고 홍보에도 사용하고 있다.
아로마 휠은 와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 커피, 코냑, 위스키 등의 음료에도, 초콜릿, 빵, 치즈 등의 식품에도 있다. 식품과 관련해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박찬준 와인칼럼니스트 연세대(법학)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쾰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쾰른대 부설 범죄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와인의 매력에 빠지면서 지금은 와인 용품을 제작, 해외로 수출하는 디렉스인터내셔날 대표를 맡고 있다. 독일와인협회 공인 와인 저널리스트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