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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막걸리, 환골탈퇴하다 |
글쓴이: 청개구리 | 날짜: 2009-05-14 |
조회: 3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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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걸리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구공탄 집에서 대포 한잔 기울이는 걸 낙으로 삼는 장년층의 얘기가 아니다. 20~30대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막걸리 매니어가 늘면서 막걸리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여성들이 마시는 막걸리와 아저씨들이 즐겨 찾는 ‘대포 한잔’의 성분이 다른 건 아니다. 그 막걸리가 그 막걸리다. 다만 담는 그릇과 먹는 방법이 달라졌다.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촌 등을 중심으로 ‘막걸리 칵테일’ 주점이 번성하고 있다. 막걸리에다 과일주스 등을 섞어 색깔을 내고, 유리 칵테일 잔에 담아내는 집이다. 한 사발 “캬~” 하고 들이켜는 게 아니라 칵테일처럼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마시는 음료가 됐다. 그야말로 겉포장 한번 살짝 바꾼 것뿐인데 세상의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막걸리로선 팔자를 고친 격이다. 막걸리 열풍엔 일본의 ‘마코리 애호가’들 의 공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마코리’로 불리는 막걸리가 최근 몇 년 사이 웰빙 음식으로 떴다. 달콤하고 톡 쏘는 맛에 반한 일본 여성들이 ‘마코리 칵테일’을 사랑하게 되면서 마코리는 ‘난생 처음’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일본에선 팩이나 유리병에 담겨 건강주로 팔려 나가기도 한다.
흔한 것은 귀하지 않은 법. 한국에선 흔해 제대로 눈길조차 받지 못했던 막걸리가 이렇게 바다 건너 귀한 대접을 받게 되면서 국내에서도 그 진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들이 자주 찾는 대형 마트 등엔 막걸리 진열장이 따로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호텔 메뉴에도 막걸리가 올라가고, 젊은 여성들의 저녁 모임 때 메인 술자리도 차지했다. 가히 ‘막걸리 전성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만하다.
아가씨는 멋으로 한잔, 아저씨는 맛으로 두잔
막걸리는 이제 ‘대포나 한잔’을 외치는 아저씨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젠 세대를 초월해 개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음료가 됐다. 나이 지긋한 세대는 한 사발을 쭉 들이켠 뒤 ‘캬~’ 하는 그 맛에 마시고, 젊은이들은 예쁜 칵테일잔에 담아 분위기에 취해 마신다. 막걸리의 ‘Old & New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서울 빨주노초 과일맛에 끌렸다
서울 신촌의 막걸리 칵테일 전문점 ‘뚝탁’에선 여성들끼리만 온 테이블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딸기 칵테일을 주로 먹는데 막걸리를 마시는지, 주스를 마시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부드러워요. 무엇보다 숙취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지난 주말 이 업소에서 만난 이지현(26·초등학교 교사)씨는 막걸리 칵테일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업소에서 파는 칵테일 종류는 모두 15개. 딸기·키위·복숭아·포도·파인애플·유자·블루베리 등 생과일 외에 쌀·콩·보리 등을 섞은 오곡, 수삼 등도 재료가 된다. 이 중 딸기·키위·파인애플 칵테일이 가장 인기라고 이 업소의 조현민(27·사진) 대표는 말했다. 주로 여성들이 시키는 메뉴다. 하지만 남성들은 수삼탁주를 많이 찾는단다.
막걸리 칵테일 가격은 한 병(1000mL)에 9000~1만원으로 싸지 않다. 하지만 조 대표는 “막걸리가 없어서 못 팔 때도 있다. 하루 평균 판매량이 100병 정도인데, 재고가 바닥나 손님을 돌려보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막걸리 문화가 퍼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사발에 담아 ‘~위하여!’를 외치며 마시지는 않는다. 이들의 막걸리잔은 사발이 아니라 칵테일잔이고, 단숨에 들이켜는 게 아니라 홀짝홀짝 마신다. 일명 ‘막걸리 칵테일’이 젊은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 칵테일은 빛깔부터 일반 막걸리와 다르다. 빨강·노랑·보라 등 총천연색이다. 얼핏 보면 주스처럼 보인다. 제조 방법은 간단하다. 막걸리에 일정량의 생과일 주스 등을 붓고 잘 섞어주면 된다. 저마다 새로운 맛을 내는 막걸리 칵테일 집들도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청담동의 ‘락락’은 딸기요구르트 또는 곡물요구르트와 탄산음료를 섞은 막걸리 칵테일을 선보인다. ‘꼬치필때’도 숙대점을 포함한 13개 체인점에서 딸기·키위·아카시아주스 등 3종의 막걸리 칵테일을 내놓는다. 막걸리 칵테일이 국내 시장에 등장한 것은 4년 전쯤이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라고 업소들은 밝혔다. 막걸리가 다른 술에 비해 영양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 막걸리 칵테일이 여성을 중심으로 유행한다는 사실이 최근 국내에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막걸리 칵테일 주점은 서울의 신촌·숙대앞·건대앞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20여 개 정도 생겼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속도는 빠른 편이다. 이에 요식업계는 막걸리 칵테일이 새로운 대형 막걸리 소비처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주 통 큰 안주 인심에 홀렸다
전북 전주시 삼천동의 일명 우체국 골목엔 눈에 띄는 게 막걸리 주점이다. 산수화·풍경화로 외관을 장식하고, 거기에 시나 시조를 써넣은 집들은 막걸리집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이 바로 ‘삼천동 막걸리 타운’이다.
어느 집에든 들어가 1만2000원짜리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키면 푸짐한 안주가 따라 나온다(사진). 김치·나물 같은 밑반찬에서부터 두부김치·홍어삼합에다 해물요리까지 줄잡아 20가지는 족히 된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키니 해삼·전복·코다리·산낙지·장어구이·새우소금구이가 차례로 나온다.
삼천동 녹주막걸리 정현자(47) 대표는 “예전부터 전주에서는 안주값을 받지 않았다”며 “남는 건 별로 없지만 즐겁게 먹는 손님들을 보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안주는 철마다 변하고, 얼마나 주느냐도 주모 마음이라고 했다.
전북 전주는 막걸리의 고장으로 꼽힌다. 외지인에게 전주라면 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이 유명하지만 전주시민들은 여기에 꼭 막걸리를 포함시킨다. 이들에게 막걸리는 술이 아닌 ‘음식’이다. 도심에서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 주변까지 수십 개의 막걸리 주점들이 타운을 형성할 정도다. 시내에 성업 중인 막걸리 주점만도 줄잡아 200여 곳에 이른다.
막걸리 타운도 삼천동을 비롯해 서신동·평화동·효자동·경원동 등지에 형성돼 있다. 삼천동 우체국 골목은 그중 가장 먼저 생긴 타운이다. 10여 년 전 먹자골목이었던 이 지역에 한 할머니가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고 주점을 시작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이 집에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 막걸리만 주문하면 안주를 무료로 주는 인심 좋은 주모 덕이었다. 이후 주변 음식점들이 아예 막걸리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리고 삼천도서관 옆에도 10여 곳이 더 생겼다.
삼천동이 전형적인 40~50대를 겨냥한 대폿집이라면 조금 뒤에 생긴 서신동 막걸리타운엔 20~30대 젊은 층이 모인다. 삼계탕과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퓨전 음식이 기본안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성준(35·회사원)씨는 “안주가 맛있는 집, 주모가 재미있는 집, 예스러운 색채가 강한 집 등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춰 단골집을 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주는 외환위기 전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막걸리가 부활하면서 아예 시가 나서서 막걸리 프로젝트까지 벌이고 있다. 전주시는 2007년 ‘막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문인·예술인 단체와 손잡고 막걸리 업소와 주변 환경 정비를 지원하고, 막걸리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외지인을 끌어 모으는 프로젝트다. 동양화와 시가 어우러진 막걸리집 외관도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단백질에 유기산까지 듬뿍 적당히 마시면 ‘웰빙’
막걸리를 왜 ‘웰빙 술’, 심지어 ‘건강식품’이라고까지 하는 걸까. 일단 막걸리의 단백질 함유량은 1.9%로 다른 술(청주 0.5%, 맥주 0.4%)에 비해 많다. 필수 아미노산은 10여 종, 피부 미용에 좋은 비타민B 복합체도 들어 있다.
막걸리의 신맛을 내는 유기산도 대표적인 웰빙 성분이다. 젖산·구연산·사과산 등이 0.8% 정도 함유돼 체내 피로 물질을 제거하고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해 변비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장수촌 사람들이 먹는 발효유나 과일즙에 이런 유기산이 많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최근 학계의 ‘막걸리 연구’가 힘을 보탠다. 최근 신라대 배송자 교수팀은 막걸리에 항암 성분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막걸리 농축액을 투여하자 간암·유방암·자궁경부암 세포의 60% 정도가 증식이 억제되는 효과를 보였다는 것. 또 손상된 간 조직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갱년기 장애 유발 요인도 막걸리 성분으로 정상군보다 낮게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대 식품생물공학과 배송환 교수팀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배 교수는 “막걸리 발효 과정에서 운지버섯에서 추출한 항암물질(크레스틴)보다 활동성이 왕성한 항암물질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막걸리가 성인병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술이 고혈압·심장병 등을 유발시키는 것과 달리 막걸리는 살아 있는 효모 덕에 혈청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고려대 부설 한국영양문제연구소 주진순·유태종 교수 연구 결과). 하지만 이런 성분도 적당히 마셨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의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막걸리도 술이다.
막걸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쌀로만 빚는다?
고두밥(술밥)을 쪄서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는 전통 막걸리는 쌀이 주원료다. 하지만 1964년 식량 부족으로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밀가루가 대신 쓰였다. 규제가 풀린 지금도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로 빚는 막걸리가 적지 않다. 하루 1만3000병(750mL 기준)을 출하하는 전주삼화주조는 100% 밀가루 막걸리다. 이동주조의 ‘이동쌀막걸리’는 쌀 60%에 밀가루 40%를 섞는다.
플라스틱 통으로만 나온다?
2030세대를 겨냥해 패키지도 업그레이드됐다. 배상면주가는 투명 유리병에 막걸리를 담은 ‘대포막걸리’를 판매한다. 캔막걸리도 등장했다. 국순당의 캔막걸리는 저온살균 처리 후 밀폐·포장해 제조일로부터 1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 서울탁주제조협회도 캔막걸리 ‘월매막걸리’를 내놓고 있다.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
숙취가 심하다면 불량품으로 의심해야 한다. 제대로 숙성이 안 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적정 숙성 기간은 8~10일. 이보다 짧게 발효된 제품은 배 속에서 탄산가스를 만든다. 이것이 뇌로 올라와 두통을 일으키고 입에선 트림이 난다. 과거엔 생산가를 낮추려고 ‘카바이드’를 섞은 탓에 숙취가 생겼다. 카바이드는 석유와 비슷한 성분의 화학물질로, 막걸리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발효시키기 위해 쓰였다.
동동주와 같은 것이다?
막걸리는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술로서 빛이 탁하고 알코올 성분이 적다. 맑지 못하고 탁하다 하여 탁주, 탁배기로도 불린다. 하지만 동동주는 다르다. 찹쌀로 만든 맑은 술에 밥알을 동동 뜨게끔 빚은 술로 막걸리하고는 전혀 다른 술이다.
흔들어 주세요, 제맛 보려면
막걸리는 전국 800여 개가 넘는 술도가에서 만든다. 그래서 품질도 맛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좋은 막걸리를 고르려면 몇 가지 기본 요령을 알아야 한다.
●마개가 꽉 닫혀 있는지 살펴야 한다. 막걸리의 톡 쏘는 맛은 천연가스가 만드는 기포에서 생기는데, 마개가 헐거우면 이 청량감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물질·세균으로 변질되기 쉬운 막걸리에서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흔들지 않았는데도 탁하고 가라앉은 부분이 별로 없다면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막걸리라고 봐야 한다.
●잔에 따랐을 때 사이다처럼 기포가 올라오는지도 체크해 보자. 이는 막걸리에 살아있는 효모가 숨을 쉬면서 탄산가스를 내보내는 증거다. 이를 볼 수 없는 막걸리는 살균 처리돼 영양분이 없거나 제대로 발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잘 숙성된 막걸리를 골랐다면 아래위를 잘 섞어서 마셔야 제대로 먹는 것이다. 다이어트 때문에, 맥주와 섞어 먹느라 막걸리의 맑은 부분만 먹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서울탁주협회 서울제국연구소의 성기욱 전무는 “병 바닥에 가라앉은 성분을 찌꺼기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항암 성분 등 건강에 필요한 생효모가 농축돼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맛있게 먹는 기간도 따로 있다. 출시된 뒤 하루 이상 냉장 보관하는 게 좋다. 막걸리를 만들 땐 원액의 도수(14도 내외)를 낮추기 위해 물을 섞는데, 효모가 발효하면서 물이 알코올로 변하는 데 하루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막걸리’의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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