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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있는 그대로의 맛'이 우러나요 본문기다리면 '있는 그대로의 맛'이 우러나요 |
글쓴이: 초록샤인 | 날짜: 2014-05-25 |
조회: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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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세상 만물도 사람 마음도 철석 같았던 사랑의 약속도 시간이 가면서 변해간다. 뱃전에 금을 그어가며 영원을 희구하지만 인간이 탄 우주라는 배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각오와 다짐은 영원할 수 없기에 오히려 소중하다. 일식 다이닝과 이자카야를 겸한 서울 대치동의 < ;아리노마마 > ;는 '있는 그대로'라는 뜻의 옥호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좋은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겠다는 초심을 이름에 반영했다.
일식도 슬로푸드?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이 집은 식재료나 양념을 직접 만들어 쓰는 비율이 높다. 소스나 장류 등은 기성품을 사서 쓰면 비용도 싸고 시간도 절약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손도 더 필요하고 인건비도 더 든다. 호주와 일본까지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주인장이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수준 높은 고객이 수준 높은 음식을 알아보고, 그 집의 음식 수준을 더 높여준다. 수준 높은 음식점은 수준 높은 고객만 부른다. 이른바 선순환이다. 돈이 더 들어가도 옥호처럼 있는 그대로의 재료 맛을 살리려는 이유다.
주인장 부친은 일식관련 외식사업을 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주인장은 막연히 부친의 회사에서 일하려고 했다. 그런데 부친은 관리 인력은 더 필요 없고, 현장에서 일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부친의 업소에서 4년간 초밥과 일식 조리 경험을 쌓고, 1년간 남의 이자카야에서 근무했다. 짧지 않은 경험 끝에 그가 터득한 결론은 일식도 한식처럼 슬로푸드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아리노마마 > ;는 지상 2층 지하 1층의 독립건물이다. 주인장이 무리해서 이 건물을 얻은 것은 널찍한 지하 공간이 맘에 들어서였다. 지하실에선 각종 장류와 소스와 육수가 맛있게 익어간다. 샐러드 소스는 끓여서 숙성시키고 초장, 또는 쌈장조차도 어느 정도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특히 드레싱은 저온숙성을 시킨다. 이해가 간다. 사실 생선회 자체는 맛이 없다. 회 맛은 찍어먹는 장이나 소스 맛 아닌가?'회쌈김치'에 싸먹는 두툼한 회, 제 맛 착실히 내는 다양한 음식들
이 집은 일식 다이닝을 추구하는 일식집답게 코스 메뉴를 잘 짜놓았다. 가격대에 따라 몇 가지 코스가 있으나 큰 얼개는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다채로우면서 군더더기 없이 푸짐하다. 가격에 비해서도 만족도가 높다.
자리에 앉으면 먼저 오토시(お通し, 주문하기 전 미리 내는 간단한 음식)가 나온다. 민물 새우깡, 해파리냉채, 유자청 곁들인 견과류 볶음이다. 여기에 달걀찜이 정갈하게 나왔다. 어떤 이는 오토시를 보고 그 집 수준을 평가한다. 이 집은 실속 있고 단아한 차림새다.
오토시로 입을 다시면 전채요리의 일부인 토마토 샐러드와 사시미 샐러드가 나온다. 삶아 껍질을 벗긴 토마토에 삶은 새우, 신선한 새싹이 가세했다. 수제로 만든 과일 소스와 발사믹 소스가 토마토 맛을 한껏 드러내준다. 사시미 샐러드는 철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흰살 생선으로 만든다. 요즘에는 자연산 광어를 쓴다.
전채요리가 끝나면 메인 사시미와 특선 해산물이 나온다. 코스메뉴의 가격대에 따라 도미, 농어, 광어 등 생선 종류가 갈린다. 손님 접대나 특별한 기념일이라면 비싼 코스를 택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를 골라도 실속 있고 알차다.
회 한 점 크기가 웬만한 인절미보다 훨씬 두툼하고 크다. 몇 점만 먹어도 배가 벌떡 일어난다. 좀 더 많이 먹고 맛나게 먹으려면 김치와 방풍나물 장아찌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주방에서 내온 생선회가 적지 않은 양이다. 그런데 배가 차지 않으면 생선회는 얼마든지 무한리필이 된다니 '생선회 호랑이'에겐 귀를 쫑긋 세울 소식이다.
특선해산물로는 돌멍게, 해삼, 전복, 문어, 참다랑어의 뱃살, 볼살, 머리고기 등이 다채롭게 나왔다. 내용물은 계절에 따라 구성이 달라진다. 마치 격자형의 용기는 수산시장의 어판장 한 쪽을 통째로 떼어낸 듯 했다. 신선한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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