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살구가 다르고 진달래와 철쭉이 다르듯이 돼지고기끼리도 비슷한 듯 서로 다르다. 버크셔 품종은 검은색 털과 한결 뛰어난 맛으로 흑돈이란 이름 아래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몇 해 전에는 듀록이라는 품종의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은 적이 있다. 돼지고기 맛이 다 거기서 거리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얼마 전까지 맛나게 먹었던 삼겹살이 왠지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 돼지고기 삼겹살에 비해 육즙도 쉬 마르지 않았고, 살 속에 지방이 작고 조밀하게 박혀 있어서 익을 때 고소한 풍미가 무척 뛰어났다. 육즙도 촉촉했다. 다른 양념이나 심지어 소금조차도 필요 없었다. 그냥 먹어도 간이 입에 맞았다. 그때 듀록의 우수한 육질을 체험으로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성이다. 사육기간이 길어 단시일 내에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긴 사육기간은 그만큼 높은 비용을 뜻한다. 듀록 돼지고기를 시중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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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돈가스 개발 끝에 내린 돈가스의 결론
한동안 잊었던 듀록 돈육을 돈가스 집에서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돈가스는 돼지 전지나 후지 부위를 두들겨서 육질을 부드럽고 커 보이게 한 낮은 급의 음식이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돈가스는 돈가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가스를 고급 육종의 등심과 안심으로 만든다니 처음엔 좀 의아스러웠다. '아니 그 좋은 고기를 그냥 구워서 먹지, 뭐 하러 돈가스로 만들어 먹을까'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고급 육종의 고기로 돈가스를 만든 <하남 장 돈까스>의 시도는 그래서 무모해 보였다.
'듀록 돈가스'는 워낙 돈가스를 좋아했다는 주인장 장보환 씨가 대한민국 최고의 돈가스를 만들어보겠다며 만든 작품이다. 그는 틈만 나면 우리나라 돈가스 집을 순례했다. 안 먹어본 돈가스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발과정에서도 명이나물 돈가스, 상추쌈 돈가스 등 별별 희안한 돈가스를 다 만들어보았다. 그러다가 최종 결정을 본 것이 지금의 듀록 돈가스다. 일본에서 제일 가는 돈가스를 가상 경쟁 상대로 설정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돈가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돈가스로 만들기 전에 먼저 듀록의 안심과 등심을 와인에 담가 24시간 냉장숙성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잡내가 사라지고 고기 질도 부드러워진다. 안 그래도 좋은 고기 질이 더 개선된다고.
그러나 돈가스를 먹으면 제일 먼저 입 안과 혀에 닿는 부분은 고기가 아니라 빵가루를 입힌 거죽이다. 혀에 닿는 첫 느낌에서 돈가스의 첫인상이 결정된다. 아무리 좋은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라고 해도 첫 맛에서 바삭한 저항감이 입 안에 느껴지지 않으면 매력이 없다.
튀기기 전 빵가루를 만져봤다. 의외로 촉촉하고 폭신폭신했다. 입에 넣어보니 빵 맛도 구수했다. 그런데 이것이 돼지고기를 감싸 안고 뜨거운 기름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나오면 영락없는 고슴도치 털이 된다. 그렇게 부드러웠던 생 빵가루가 바늘을 곧추세운 고슴도치가 된다.
일단 입에 넣었다. 한눈에도 바삭해 보였던 돈가스가 입에 들어가 씹는 순간 소리로 촉감으로 또 한 번 바삭했다. 어떤 음식이든 재료가 좋으면 음식의 질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씹으면서….
부위에 따라 돈가스 메뉴가 달랐다. 듀록의 등심으로 장 돈까스(8000원)와 로스까스(8000원)를 만들었고, 안심으로 히레까스(8500원)를 만들었다. 같은 등심으로 만들었지만 한국식으로 소스를 부어 만든 것이 장 돈까스이고, 로스까스는 일본식으로 소스를 찍어먹는다.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역시 안심으로 만든 히레까스가 제격이다.
잘 만든 돈가스에 생맥주, 회식 후 2차 메뉴로도 제격
돈가스에 들어가는 소스도 점포에서 만든 수제품이다.
우스터 소스 베이스에 파인애플, 키위, 배, 사과를 갈아 넣고 직접 3시간 이상 졸여서 만들었다. '돈가스가 마지막까지 느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인장 장씨의 생각이다. 이 집의 소스 맛도 여기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 단맛이 세지 않다. 과일에서 우러난 자연스런 단맛이 뒷맛으로 남는다.
튀김 요리의 질은 아무래도 튀김 기술과 기름이 좌우한다. 탕수육이 그렇고 돈가스도 그렇다. 이 집에선 기름에 일정 비율의 정제 돈지를 섞어서 튀긴다. 돈지의 고소함이 돈가스에 스며 고소한 맛이 한결 배가된다. 사용한 기름은 하루에 한 번씩 갈아준다. 기름을 오래 사용하거나 재생 후 사용하지 않으니 돈가스 색깔이 밝고 쩐내가 나지 않는다.
잘 만든 돈가스는 좋은 안줏감이기도 하다. 저녁에는 일본식 선술집처럼 돈가스에 생맥주를 곁들여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보통 저녁식사나 회식 후 습관적으로 치킨 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셨다. 잘만 만든다면 돈가스 집은 '2차' 장소의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할 듯 하다. 퀴퀴한 공기에 위에도 부담스러운 퍽퍽한 치킨은 아무래도 진부하다. 쾌적한 실내 분위기, 위장과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돈가스 메뉴구성이라면 한결 편안한 '2차'가 되지 않을까?
탁 트인 개방형 주방과 높은 천장도 비교적 작은 매장임에도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소박한 일본 선술집 풍 인테리어도 돈가스 맛을 더해준다. 일행이 많거나 돈가스만으론 허전하다면 7000원대 우동과 고소함이 일품인 수제 고로케샐러드로 풍성한 식탁을 구성해도 좋다. 돈가스는 포장판매도 가능하며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은 쉰다.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고기 가운데 삼겹살만 유독 선호한다. 삼겹살은 비싸지만 그 외 다른 부위는 남아돈다. 이러니 양돈농가나 유통업계에서는 아우성이다. 그런 면에서 다른 부위를 활용한 돼지고기 요리가 속속 개발되어, 국민건강이 향상되고 돼지고기 요리 가짓수도 풍성해지고 양돈농가도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다 소주에 삼겹살만 아는 과장님 부장님들이 좀 더 다양한 회식문화에 눈뜨면 금상첨화일 텐데…
<하남 장 돈까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031-791-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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