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잣이 요즘 제철이다. 잣은 피부 탄력과 혈압 유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잣나무는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에서도 자라지만 원산지는 우리나라다. 이 가운데서도 경기 가평군 축령산 일대에 많이 재배하며 지역 대표 특산물로 손꼽힌다.
○ 오감으로 맛보는 가평잣경춘국도(국도 46호선)를 따라 청평 방향으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축령산 자락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말이면 아침고요수목원 등 삼림욕장을 찾은 사람으로 늘 북적인다. 이곳에서 포천 방향으로 2km 정도 더 들어가면 가평군 상면 영양잣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잣 익는 마을’로도 불린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잣나무에서 풍기는 향긋한 송진 향이 코를 자극한다. 10여 년 전 20여 농가가 힘을 합쳐 축령산잣영농조합을 만들었다. 요즘 수확철이어서 농민들은 주문받은 상품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수근 대표(50)는 “올해는 예년에 비해 흉년이어서 물량이 많이 부족하지만 직접 찾아오는 사람과 온라인 주문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이곳 말고도 가평군에는 가공업체가 20여 개 더 있다.
잣나무는 보통 심은 지 20년은 돼야 열매를 맺는다. 35∼40년 된 나무들이 가장 왕성하게 잣을 생산한다. 매년 5월이면 한 나무에서 암꽃과 수꽃이 수정해 8월에 어린 잣송이를 맺는다. 이 잣송이는 해를 넘겨 이듬해 9, 10월에 익는다. 꽃이 피고 열매가 익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리는 셈이다. 한 잣나무에서 보통 3년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다. 수확은 대개 9∼11월 3개월 동안 이뤄진다.
가평에 인접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잣칼국수 전문’이라는 음식점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가을철 별미여서 요즘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잣칼국수는 차가운 맛과 뜨거운 맛 두 종류가 있다. 잣칼국수는 국수에 밴 특유의 잣 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잣을 갈아 멸치 등과 함께 우려내 국물은 뽀얗다. 면발도 잣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해 쫄깃쫄깃하다. 언뜻 보면 콩국수가 생각난다. 맛은 콩국수보다 진하고 담백하다. 찬 잣칼국수는 식성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하기도 한다. 고명으로 오이나 애호박을 많이 얹는다. 가평의 맑은 물과 고소한 잣이 만나 탄생한 잣막걸리도 유명하다. 잣 특유의 고소함과 감칠맛이 나고 곡주 특유의 두통과 숙취가 없다. 잣두부 잣주먹밥 잣죽 잣김치 잣전골 등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이다.
잣은 다른 농산물에 비해 국산과 중국산을 구별하기 어렵다. 국산은 씨눈이 거의 붙어 있지 않고 표면에 상처가 없다. 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 체험도 하고 잣도 먹고가평군은 연평균 강수량이 1300여 mm, 평균기온은 10.5도로 기후조건이나 토질이 잣나무 재배의 최적지다. 이 지역이 잣으로 유명한 만큼 잣을 이용한 주말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반딧불마을의 체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삼림욕을 즐기면서 잣송이를 직접 까보고 주워온 잣을 불에 구워 먹는 체험도 있다. 잣 체험과는 별개로 소여물 주기, 경운기 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또 ‘초롱이둥지마을’ ‘아침고요 푸른마을’ ‘영양잣마을’ 등에서도 잣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